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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의 고자세/유석기 경제부기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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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의 고자세/유석기 경제부기자(기자의 눈)

입력
1992.04.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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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과 17일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정부와 30대 그룹 회장단 사이의 간담회는 지금까지 관례에 비춰 볼때 매우 보기드문 현상이 빚어졌다.정부에서는 최각규부총리를 비롯,재무·상공·노동부장관 등 4개 부처 핵심 간부들이 일제히 나타난 반면 재계는 절반 이상이 실질적 오너가 아닌 사람을 대리 참석시킨 것이다.

특히 국내 10대 재벌 그룹은 하나같이 총수는 불참한 채 전문 경영인이나 심지어 2세를 대신 내세우기도 했다.

이번 간담회가 부총리 초청 형식이고,재벌 그룹 오너들은 나이가 많거나 바빠 대리자를 보내 정부의 정책 의지를 들었으니 목적은 달성한게 아니냐고 대수롭잖게 넘길 수도 있다.

당초 이 모임은 정부 당국이 노사 관계의 3자 개입 금지 원칙을 깨고 임금 안정을 위해 적극 개입하려는 방침을 공식화하는 자리여서 사용자측인 재벌 입장에선 내심 크게 고마워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런데 흔히 말하듯 6공 들어 발언권이 부쩍 강해졌다는 대우 김우중회장,선경 최종현회장마저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정부측 관계자들은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다는 후문이다.

이날 모임을 마친 뒤 경제기획원 직원들은 『재계가 스스로 자리를 만들어 고위 공직자들에게 건의 내용을 들어만 달라던 때가 바로 엊그제인데 정부가 일부러 현안 해결에 도움을 주겠다며 불러도 아랫 사람을 보낸 꼴』이라고 탄식했다.

재벌 총수들의 불참 사태는 좋게 봐줘서 지난해 현대 그룹 정주영회장의 정치 참여 이후 대정부 관계에 가급적 명확한 태도 표명을 유보하려는 자세 때문이라 여겨줄 수 있다. 또 전경련 등 재계 단체가 구심력 역할을 충실히 하지 못해 단합된 모습을 보이기 어려운 사정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만에 하나 『경제 각료들의 잔소리는 고용 사장더러 적당히 듣게 하고 진짜 필요한 사항은 고위층과 직접 해결하면 그만이다』는 사고 방식에서 비롯됐다면 정말 걱정이다.

온갖 특혜를 줘 키워온 재벌들로부터 까지 정부가 시답잖은 존재로 돼버린 이날의 사태를 대부분 국민들은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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