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현장 군인들 서성… 저격전 헌병 출동/“포병사령관 지시로 사격연습” 새로 드러나/“안씨 진상 은폐 연막 증언” 추측백범 암살범 안두희씨의 증언은 과연 어디까지 진실인가.
안씨가 김창룡 특무대장의 「암시」에 따라 암살을 결행했다는 당초의 진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장택상 외무부장관,노덕술 수도경찰청 수사과장,최운하 수도경찰청 사찰과장 등 4명의 「직접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고 보다 구체적인 배후를 거론했으나 이같은 주장은 최근 속속 떠오르고 있는 당시 관련 인사들의 증언과 대부분 사실 관계가 어긋나는 것이어서 안씨가 암살 배후 전모를 은폐하기 위해 축소,혹은 왜곡 증언을 하고 있지 않나하는 의혹이 강하게 일고 있다.
안씨는 『김창룡과 장택상 등으로부터 지시를 받고 범행하긴 했으나 49년 6월26일의 범행은 계획된 것이 아니라 당일 아내가 낙태한데다 경교장에 도착했을 때 평소 싫어하는 「꽃마차는 달려간다」는 노래가 흘러나와 기분이 울적해진 상태에서 백범의 질책을 받고 순간적으로 총을 쏘았다』고 진술,「우발 사건」임을 주장했다.
그러나 ▲범행 당시 경교장 주변에 많은 군인들이 서성댄데다 사건 직후 「무슨 일이 없느냐」는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는 백범 비서 선우진씨의 증언과 ▲저격 전시간에 헌병대가 경교장에 출동했다는 당시 헌병대 특무상사 이창혁씨의 증언 및 ▲범행전부터 장은산 포병사령관의 지시로 인천에서 사격 훈련을 받는 등 사전 준비를 치밀히 했다는 군동료 정관일씨(71)의 증언등에 비추어 보면 거의 허위 증언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또한 안씨가 김창룡을 배후로 밝힌지 이틀만에 갑자기 장택상등 경찰 출신 3명을 추가로 배후로 거명한 것도 그 진위와 거명 배경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안씨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관련 인사와 학자들은 『당초 김창룡만을 배후로 지목한데 대해 이견이 제기되자 실질적 배후인 군부 고위층등을 보호하기 위해 엉뚱한 장씨등을 물고 들어갔다』는 반론을 펴고 있다.
즉 정관일씨는 『안씨가 범행 한달 전부터 당시 소속 부대장이었던 장은산 포병 사령관의 지시로 사격 연습을 했으며 거사 자금까지 건네 받았다』고 증언,당시 김창룡 특무대장보다 차원 높은 군고위층의 계획적인 「작전」에 의해 범행이 이루어졌음을 시사했다.
이는 6·25 전쟁통에 복권된 안씨가 유력 후견인인 김창룡이 56년 암살당한 후에도 승승장구, 군고위층의 적극적인 비호가 지속됐던 것을 입증해 주는 사실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다.
또한 정관일씨와 앞서 거론된 이창혁씨 등의 증언은 『장 포병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서청 계열 군부 인맥이 위관 장교와 하사관 중에서 안씨를 포함한 「정예 행동대」를 선발해 49년 6월 3차례의 시도끝에 26일 안씨가 단독 범행을 성공시켰다』는 서북 청년 단원이자 안씨의 동료인 홍종만씨의 당시 주장과 일치하고 있다.
이밖에도 현대사 자료를 다수 수집한 극작가 김교식씨도 『당시 경찰 내부에서도 별도의 암살 계획이 추진되고 있어 경찰 간부들이 굳이 육군 장교인 안씨를 포섭할 이유가 없었다』며 『안씨가 거명한 노덕술씨등은 실제로는 김지웅에게 거사 자금을 지원했다』고 밝혀 안씨의 증언을 반박했다.
게다가 안씨가 거론한 경찰 간부들은 모두 후손들이 국내에 체류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안씨가 후환이 없을 만한 인물만을 일부러 거론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이같은 사실을 종합해 볼 때 안씨의 경찰 간부에 대한 추가 배후 진술은 김창룡 특무대장외의 군부 관련 인물과 정부 인사등 진짜 배후 인물을 은폐하고 자신과 직접 관련이 없는 인물을 끌어들임으로써 진상 규명의 초점을 흐리게 할 의도로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윤승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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