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전에 임진왜란 발발 4백돌을 맞았다. 최근 정신대문제,MBC TV극 「분노의 왕국」의 한·일 파문 확산을 보면 한·일간의 감정의 골은 좁아지기는 커녕 오히려 넓어지고 있는 느낌을 갖는다.감정의 골 못지 않게 사고의 차이도 좀처럼 좁혀지고 있지 않다. 양국간 무역불균형의 시정과 기술이전에 대한 시각도 게속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일본측은 대외국제수지 적자시정과 기술이전이 동시에 달성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일본은 한·일간의 무역역조 현상이 한국이 필요로 하는 자본재와 원자재를 수입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본다. 따라서 한국이 산업경쟁력을 강화하려고 한다면 국제수지 적자폭은 오히려 더 커질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한국의 소비재 수입제한에 대해서는 별 반대가 없지만 무리하게 자본재·원자재 수입을 줄여서 국제수지 적자규모를 줄이려 한다면 이것은 오히려 한국경제에 해가 된다는 입장이다.
한편 기술이전은 당연히 대가를 지불해야 하므로 기술이전의 폭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 만큼 국제수지 불균형은 더욱 커진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의 기술이전 요구는 「하아테크」(High Tech)에 국한된 선택적 요청이기 때문에 누가 많은 돈을 투자한 기술을 쉽게 넘겨주겠느냐고 한다. 그렇다면 첨단기술을 포함한 가장 자연스러운 기술이전형태는 직접투자에 따른 기술이전인데 이 경우 투자활성화를 위한 한국측의 환경조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한국이 일본에 대해 특별대우를 요구하고 있는데 특별대우를 요구할 근거가 어디에 있느냐고 반문한다. 과거의 불편한 역사적 관계가 그 원인이라면 이제는 과거를 잊고 미래를 지향할 때가 아니냐는 주장이다.
이와 같은 일본측 주장은 우리에게 몇가지 시사점을 던져준다. 그중 하나는 일본측 주장에 대해 냉철한 논리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며,둘째는 일본측 주장에서 옳은 점이 있다면 우리도 그것을 과감하게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술이전과 한·일 무역역조 개선은 일본이 주장하는 것처럼 결코 상호 모순된 개념이 아니다. 일본측의 주장에서 빼놓고 있는 점은 일본시장의 개방문제와 기술개발에 따른 장기적 수출증대 효과이다. 우리는 기술을 축적하고 수출의 증대를 통한 확대균형을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 국내시장은 결코 제대로 개방이 되어있지 않다. 물론 여기에 대한 일본측 대응은 간단하다. 관세율을 보아도 일본은 가장 개방된 시장이며 한국측으로부터 수입할 상품이 별로 없다는 입장이다. 일본은 이와 같은 논리를 모든 교역파트너에 대해서도 쓰고 있다.
그렇다면 똑같은 재화의 가격이 세계의 어느 곳보다 비싸고 일본인의 생활의 질이 그 소득 수준에 걸맞지 않게 낮은 것은 어떻게 설명이 될까. 외국으로부터 수입할 재화가 없어서 일본은 국제수지 흑자를 누릴 수 밖에 없다는 논리는 결코 서지 않는다. 일례로 몇 년전에 나온 일본 노무라연구소의 한 보고서에 의하면 일본이 서구식으로 주택을 개량만해도 일본의 국제수지 흑자는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일본의 시각은 국제수지 불균형의 책임은 오로지 적자국에 있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불균형이 적자국의 필요성에 의해서 발생했기 때문에 불가피하지 않느냐 하는 입장이다. 한마디로 강자의 논리다. 이와같은 논리를 모든 나라에 계속해서 적용할 수 있을까. 더불어 사는 세계에서는 국제수지 불균형의 시정은 적자국과 흑자국 공동의 책임이다. 미·일간에 이루어지고 있는 구조조정회담도 아마 이러한 시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유럽에서는 국가들이 서로가 경제협력을 함으로써 공동의 번영을 누릴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유럽은 경제통합,금융통합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다. 아직 일본은 그러한 시각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과거문제는 논외로 치더라도 가장 가까이 인접한,경제규모로도 일본의 10분의 1에도 채 못미치는 한국에 대한 일본의 시각은 적어도 그렇다. 또한 이와같은 일본적 시각이 미국,유럽 등과 부딪칠 경우 한국에 미칠 여파까지도 걱정하게 한다.
기술이전에 관한 문제도 그렇다. 일본이 직접투자에 따른 기술이전을 강조하는 것은 동북아에서 일본을 중심으로 한 산업재편성 구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렇다면 일본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 산업재편성에 바람직한 기술이전은 하고 그렇지 못한 기술이전은 하지 않겠다는 논리가 된다.
우리가 일본에 대한 기술이전 요구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기술이전이며,과거 미국이 일본의 경제발전 과정에서 보여준 호의를 가진 기술이전을 의미한다.
그러나 일본측의 이와같은 시각에 대해 우리 스스로를 반성할 여지도 많다. 일본시장의 비공식무역장벽을 탓하게에 앞서서 앞으로 품질 좋은 상품을 개발하고 일본시장을 뚫으려는 우리 나름의 노력을 배가하여야 한다. 또한 한국이 과거 불행했던 한·일관계를 이유로 특별대우를 요구하고 있다는 구실을 더 이상 일본에 줄 필요가 없다. 상대방이 전혀 고려할 자세가 돼있지 않은 상황에선 말이다.
기술이전을 요구하기에 앞서 우리 자체기술개발에도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한다. 일본은 한국경제의 위기를 기술의 대외의존에서 찾고 있다. 70년대 중반,한국의 현재 경제수준이었던 일본은 이미 고유기술개발에 주력하고 있었고 이를 외국기술과 접목시키는데 성공했다는 주장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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