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질」 높이는 「디딤돌」로”/“학생들 평가기준 애매” 일부선 비판론/사제함께 부작용·갈등막는 노력 필요/교수·학교 공동참여 상설기구 설치… 학문발전 촉매제 역할되게한양대 도시공학과 학생들은 노정현교수 담당의 「도시 교통」 강의시간이 되면 진지해 진다.
노 교수가 강의를 열심히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학기가 끝나면 노 교수의 16주 강의를 저마다 평가해야되므로 소홀해질 수가 없다.
노 교수는 종강을 앞두고 반드시 「강의내용이 어떠했는가」 「과제물 부과량은 적절했는가」 등 5개 항목에 대한 학생들의 평가를 받아 이를 면밀히 분석한 뒤 다음 학기 강의에 참고한다.
지난 89년 이 학교에 부임한 노 교수는 이같은 학생들의 강의평가가 강의의 질 향상과 교육의 효율성을 제고시킨다고 믿고 있다.
학생들도 보다 나은 강의를 위해 노력하는 스승의 모습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부 젊은 교수들을 중심으로 실시되고 있는 이같은 「강의 평가제」는 제도 도입여부를 놓고 교수간 혹은 교수 학생간에 갈등이 노출되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신선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학교육의 주체인 교수가 휘청거리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학은 교수들의 업적에 대한 평가가 좀더 체계적이고 심도 있게 실시돼야 한다는 사회적인 요구와 압력을 받고 있다.
파벌과 무사안일주의가 만연돼 있는 풍토속에 안주하고 있는 교수들에게 엄격한 업적평가를 실시하는 길만이 교수 개개인은 물론 대학을 살리는 방법이란 것이다.
그러나 교수업적평가에 대한 대학의 인식과 시행실태는 매우 원시적이고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사실이다.
크게 연구업적평가와 교육업적평가로 나뉘어지는 교수업적평가중 그나마 연구업적평가는 각 대학이 교수임용을 위해 형식적으로라도 시행하고 있으나 교육업적평가에 대해서는 주장과 의견만이 분분할 뿐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지난 89년부터 대학생들이 학원자주화투쟁의 일환으로 교수강의평가제 실시를 주장하면서 이에 대한 논란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학생들은 강의평가제가 『강의에 대한 학생들의 요구를 정당한 경로를 통해 교수자에게 전달함으로써 기존 강의의 폐쇄성을 깨고 강의의 질을 높이기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경희대는 지난 90년부터 총학생회가 주관,일부 교양과목에 대한 자체적인 강의평가를 실시하고 있으며 건국대는 학생들의 요구에 따라 지난해 말부터 학과와 교수의 재량으로 강의평가를 시행하고 있다.
이화여대 총학생회가 이번학기 들어 학생들의 강의평가제 시행을 추진하고 있는 등 몇몇 대학에서 이 제도가 시행되고 있거나 추진중이다.
강의평가제에 대해 교수들은 대부분 원칙론에는 찬성하나 현실적인 여건을 들어 신중하게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일부 교수들은 학생들의 강의평가제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발,교수간,교수·학생간의 갈등 요인으로 내제하고 있다.
건국대 P모 교수는 『우리나라의 교육풍토에서 강의평가제가 대학당국에 의해 시행된다면 교권탄압의 수단이었던 교수재임용제도와 같이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며 『교수가 자신의 강의가 평가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강단에 서면 부담스럽고 자칫하면 학생들에게 영합하게 된다』고 말했다.
고려대 차석기교수(교육학)도 『현재 학생들이 제기하고 있는 강의평가제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전제한 뒤 『학생들이 교수를 평가할 수 있다면 왜 대학에서 공부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차 교수는 『설사 평가를 받는다해도 강의 자세나 강의기법 등 교육방법차원에 국한돼야 하며 강의내용이 평가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대 이범희교수(제어계측)는 지난 85∼87년 미국 퍼듀대학 전기과 조 교수로 재직하면서 매학기 학생들로부터 강의평가를 받았다.
그는 첫학기에 정장차림을 하고 서툰 영어로 진지하게,다소 어렵고 딱딱하지만 성실하게 강의에 열중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재미없고 딱딱하다」는 등의 이유로 바닥에 가까운 평가를 내렸다.
이 교수는 다음 학기에 좋은 평가를 받기위해 청바지 T셔츠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교단에 걸터앉아 미리 준비한 농담과 야한 잡담 등을 섞어가며 분위기를 조성했다.
학기말 평가결과는 「톱」이었다.
○“재단개입 경계를”
이 교수는 『이 제도가 교수들의 단점을 보완하게 하는 등 긍정적인 측면도 있으나 면학분위기가 정착되지 않고 교수·학생간의 신뢰회복이 이루어지지 않은 우리나라에선 시기상조』라고 주장했다.
강의평가제에 대해 긍정적인 교수도 우려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범위에서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강대 P모 교수는 『「학생이 교수를 평가할 수 없다」는 논리는 고루한 생각이며 교수에 대한 대학의 평가가 형식에 치우치고 있는 한 수업의 주체인 학생들의 적극적 의견개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P교수는 『그러나 진보이론의 교수는 건전한 교수,보수적인 교수는 어용·무능교수라는 이분법적 생각이 학생들에게 팽배한 상태에서 평가 잣대를 전적으로 학생들에게 맡길 수는 없다』며 『교수·학생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교수평가상설기구」를 설치,평가항목을 정하고 의견을 상호개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연세대 허영교수(법학)는 『교수사회에 뿌리박힌 안주분위기를 일신하고 연구에 대한 자극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학생들에 의한 강의 평가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며 『다만 강의방식에 대한 의견개진이어야 하며 내용이나 시각에 관한 문제는 토론을 통해 합의점을 도출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대 김철수교수(법학)는 『강의의 질을 높이기 위해 같은 과목을 같은 시간대에 각기 다른 교수가 강의하도록 하는 「교수경쟁 강의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며 『이와함께 선배들이 강의평가 안내서를 작성,후배들에게 계속 전수하는 방식으로 평가제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대 김창효교수(원자핵공학)는 『연구도 중요하지만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교수의 1차 목표이기 때문에 강의평가제는 필요하다』고 전제하고 『좋은 교재의 개발도 강의평가의 항목에 추가,연구강화뿐만 아니라 강의의 질적개선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학기 처음 강의평가를 자체적으로 실시했던 건국대 상경대 교수들도 자신들은 모르는 수업방식의 결함 등을 보충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최근 목원대 이해성교수(교육)가 발표한 「교수강의평가제의 새로운 모색」이란 논문은 많은 교수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이 교수는 논문에서 강의평가제의 실시목적을 ▲교수강의 개선을 위한 송환자료(feed back) 수집과 ▲교수 인사평가자료로의 활용 등 두가지에 두었다.
전자의 경우,교수들은 강의의 질적 개선을 위해 별 저항없이 강의평가제를 받아들일 수 있으나 후자는 입장이 다르다. 이는 「새로운 교수재임용제」로서의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고,교수간·교수 학생간의 갈등을 유발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우리대학의 여건이 대학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하는 시급한 상황인만큼 강의평가제를 도입하되 교수집단이 납득할 수 있는 적절한 대안을 마련하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 경우 뿌리내려
미국의 경우 강의평가제가 일반화되어 있다.
매년 봄학기말인 4월과 가을학기말인 11월에 실시되는 강의평가는 대학교육행정과가 만든 15∼24개의 평가문항의 설문지를 학생들이 작성하는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평가문항외에 주관적 의견을 묻는 경우도 있어 학생들은 솔직하게 의견을 밝히고 있다.
평가결과는 교육행정과에서 취합,각 대학 학과장에게 보내지는데 공개되지 않고 해당교수에게 우송,다음 학기 강의에 참고하게 한다.
버클리대학에서는 평가문항을 학교게시판에 게시하고 중간고사전에 학생들에게 쪽지를 나눠줘 무기명으로 작성하게 한다.
평가결과의 활용에 대해서는 대학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연구중심의 대학,즉 미국의 상위권 대학에서는 승진 등 임용에 반영하지 않고 단순한 참고자료로 삼고 있다.
그러나 대학원이 없거나 석·박사과정이 소규모이고 학사과정이 큰 대학,즉 강의위주의 대학은 평가결과가 나쁠 경우 인사에 반영하는 경우도 있다.
강의평가에 임하는 교수와 학생의 태도는 서로의 신뢰감속에 비교적 진지한 편이다.
□특별취재반
설희관차장·유승우·김철훈·고태성·남대희·이성철·이태희기자(사회부)
◎국내 대학중 첫 실시/경희대 어떻게 하나/총학생회 학기말에 설문조사… 결과 「백서」 통보/교수들도 의견 적극수렴… 교육개선자료로 활용
국내 대학중 처음으로 지난 90년 1학기부터 총학생회 주관으로 강의평가제를 실시하고 있는 경희대는 시행착오속에서도 학기를 거듭할수록 교수들까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등 타대학의 모델이 되고 있다.
평가대상은 교양과목에 국한시키고 있지만 시행 첫해 10과목 13개 강좌에서 지난해 2학기에는 26과목 41개 강좌로 늘어났다.
강의평가는 학기말 종강직전 학생회측이 수강학생들에게 무기명 설문지를 배포한 뒤 이를 취합,해당교수에게 통보하고,평가결과를 백서로 발간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평가문항은 학기마다 다소 달라지나 ▲강의의 취지에 대한 적합성과 수준 ▲성실성 ▲학생들의 참여보장여부 ▲과제물 부과 및 시험의 적정성 ▲학생자신의 성실도 등에 대한 객관식과 ▲다음학기 수강생에 대한 조언 ▲교수에 대한 당부 등 주관식으로 나누어 만족도를 5∼7단계로 세분화하고 있다.
총학생회측은 학생들의 설문지를 회수해 강의에 대한 종합분석과 개선방안을 작성,해당교수에 통보한 뒤 교수들의 강의평가에 대한 소감을 듣고 있다.
총학생회측은 강의평가 실시 의의에 대해 『교육의 두주체인 교수와 학생간에 이뤄지는 최고의 학문행위인 「강의」가 지금까지는 폐쇄적 주종관계에 따라 이루어지는 의례에 불과했다』며 『건전한 교육문화정착과 강의의 질적향상을 위해 강의평가는 반드시 실시돼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수들은 지금까지의 강의가 일방통행식 지식전달에 그쳐왔음을 인정,원칙적으로 동의를 표하면서도 평가방식과 항목의 내용에 대해선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지난 90년 두학기에 걸쳐 학생들의 강의평가를 받았던 박모 교수는 『강의의 질적 향상을 위해선 강의의 또하나의 주체인 학생의 의견을 겸허히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말하면서도 『교수의 인격적 자질여부를 따지거나 학생임의로 만든 잣대로 교수를 측정하는 방법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총학생회측도 평가제를 계속 시행하면서 주안점을 교수 개인보다는 강의 자체에 맞추기 위해 항목을 보다 세분화하고 객관성을 유지키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편 학생들의 강의평가가 점차 뿌리를 내리자 교수들도 평가를 주도적으로 수용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 대학교수평의회(의장 원응순교수)는 강의평가제를 올해 연구프로젝트로 정해 올바른 평가방식과 항목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원 교수는 『교수 스스로가 「학생들로부터 평가당한다」는 식의 사고에서 벗어나 강의 개선을 위한 합의적 방안모색을 교수 스스로 해나가야 할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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