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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반역자는 죄받아야” 고3때 결심/안씨 첫응징 곽태영씨 회고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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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반역자는 죄받아야” 고3때 결심/안씨 첫응징 곽태영씨 회고담

입력
1992.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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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처 안씨집 인근 옮겨 치밀준비/이 정권 관련등 캐내 진상밝혀야지난 65년 백범암살범 안두희씨에게 최초로 응징의 칼을 휘둘렀던 곽태영씨(56)는 안씨가 배후인물과 범행경위를 털어놓았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자택 거실벽에 걸린 백범의 사진앞에 앉아 27년전 그날을 회상했다.

백범이 암살되던날 『민족지도자를 잃은 이 나라는 이제 망했다』며 통곡하던 부친과 숙부의 모습을 가슴 깊숙히 담고 있던 곽씨가 암살범을 응징하고 진실을 밝히겠다고 결심한 것은 서울 환일고 3년인 19세때.

곽씨는 어린시절,독립운동가였던 숙부에게서 받아 읽고 또 읽었던 빛바랜 「백범일지」를 품에 안고 효창공원 백범묘소를 찾아 영혼앞에 엎드려 『10년안에 꼭 응징을 하겠다』고 굳게 약속했다.

그러나 대학졸업후 자금마련을 위해 시작한 사업에서 실패를 거듭했고 암살범 안씨는 강원도 일대 군부대의 군납을 독점,엄청난 부를 누리며 수십명의 경호원을 거느리고 다녀 접근조차 엄두를 낼 수 없게 되자 뜻을 같이했던 동지들도 모두 떠났다.

스스로 약속했던 10년의 마지막해인 65년말 곽씨는 혼자서 실행계획을 세웠다.

장소는 안씨의 공장이 있는 강원도 양구. 안씨는 당시 1주일씩 번갈아 서울집과 양구에 머무는 등 극도의 신분보안을 하고 있었다.

그해 12월15일 새벽 통금해제 사이렌이 울리자마자 마지막으로 백범묘소를 참배한 곽씨는 안씨가 호신용으로 늘 지니고 다닌다는 모젤권총에 맞서기 위해 시장에서 구입한 잭나이프 한자루를 갖고 갔다.

안씨집이 내려다 보이는 산중턱에 거처를 정하고 1주일을 기다렸다.

22일 상오 8시께 앞마당에 나와 세수를 하는 안씨를 발견한 곽씨는 잭나이프와 안씨의 진술을 기록하는 만년필·양면괘지를 뒷주머니에 꽂고 안씨집에 숨어들었다. 1주일동안 담너머로 고깃덩어리를 던져주며 사귀어둔 셰퍼드는 짖기는 커녕 곽씨를 향해 꼬리를 흔들었다.

안씨를 1백m가량 떨어진 빈 집으로 유인할 생각으로 공장종업원이라고 속이고 부탁이 있다며 안씨에게 넙죽 절을 했다.

그러나 안씨가 직감적으로 눈치채고 도망치려 하자 순간적으로 칼을 뽑아 왼쪽 목을 찔렀다. 칼을 맞고도 반항하는 안씨와 격투를 벌인끝에 돌을 들어 머리를 내리치자 안씨는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죽은줄 알았던 안씨는 그러나 기적적으로 회생하고 곽씨는 1심에서 3년형을 선고받았다.

그후 곽씨는 백범선생 동상건립운동을 비롯,백범기념사업회 이사로 백범의 뜻을 기리는 사업과 재야 민주화운동에 가담,백범의 뜻을 이어오고 있다.

곽씨는 『하수인에 불과한 안씨의 증언만으론 진실을 다 밝힐 수 없다』며 『이 정권의 관련사실을 철저히 파헤치고 반민족세력을 모두 응징해야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이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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