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투사 검거·고문 악명/노덕술/반민특위 반대시위 주도/최운하안두희씨의 증언으로 백범 암살사건의 배후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는 장택상 노덕술 최운하씨는 각각 백범 암살당시 외무부장관,수도경찰청 수사과장,사찰과장을 지냈던 인물이다.
이들중 노씨와 최씨는 일제때의 경찰로 독립투사들을 검거하는데 「악랄한」 명성을 날린 경찰내의 대표적인 친일파로 49년 1월 「반민특위」에 검거된 적이 있다.
장택상씨도 일제 당시 직계가족들이 은행장·군수 등으로 있었던 친일권 인사. 장씨의 부친은 경상관찰사를 지냈고 일제당시 맏형과 둘째형이 각각 대구은행 대표 취체역,신녕군수를 지냈으며 자신은 맏형아래서 은행이사·감사를 지낸 적이 있다.
16세때인 1909년 영국 에딘버러대에 유학했다 귀국한후 조선총독부·조선사편수회 간부 등이 만든 어용학회인 청구회 회장을 맡았고 해방후에는 수도경찰청장을 시작으로 외무부장관 국회의원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노씨는 일제당시 마쓰우라(송포)라는 이름으로 행세하며 대표적인 「악질 고등계 형사」로 악명을 떨친 사람이다. 종로경찰서 사범주임 평남경찰서 보안과장 등 27년간 일경의 앞잡이로 애국지사의 검거와 고문을 담당했다.
노씨는 해방후에는 「반민특위」에 반감을 품고 소속요원 암살음모까지 꾸몄다가 검거됐으나 특위 해체후 50년 1월 무죄판결을 받고 석방됐다.
역시 일경 출신인 최씨는 반민특위 요원들의 신상 뒷조사와 특위반대 시위를 배후조종하는 등 특위분쇄 주모자로 더 이름나 있다.
최씨는 결국 특위에 검거됐으나 그의 검거에 반발한 수도경찰청 산하 사찰경찰들이 특위 특경대의 해산을 요구,일제히 사표를 제출하기도 했다.
이후 경찰의 반민특위요원 습격사건까지 발생하자 압력에 못이긴 특위가 결국 최씨를 풀어줄 정도로 그는 당시 경찰내부의 실력자로 군림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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