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발전 등 위해 대서방관계 개선 불가피/개혁추구 라프산자니 대통령 위상 높아져호메이니 사후 처음으로 지난 10일 실시된 이란총선은 하셰비 라프산자니 대통령을 지지하는 온건개혁파의 승리로 판가름 났다.
「회교원칙」을 중시하는 강경파의 의회가 「정치」에 비중을 둔 온건세력으로 대체됐다는 사실은 이란의 정치노선 변화를 예고해주고 있다. 아울러 이 변화는 중동정세 및 신국제질서 구축의 해법에도 긍정적인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최종결과는 14일께 확정될 것으로 보이나 현 추세로 보면 총 2백70석중 1백90석 이상을 온건파가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30석의 수도 테헤란에서도 상위득표자 30명중 29명이 라프산자니 계열.
반면 강경파는 거두인 메디 카루비 국회의장과 알리 아크바르 모타세미 전 내무장관마저도 초반개표에서 당선권 밖으로 밀려나갈 정도로 참패를 당했다. 선거전부터 온건파 우세가 예상되긴 했지만 「싹쓸이」에 가까운 선거결과는 강경파는 물론 온건파에도 이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처럼 온건파가 예상수준을 넘어 득세하자 현지 외교가에서는 『종교시대는 가고 정치시대가 도래했다』는 다소 성급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완급차이에는 이견이 있지만 실리중시의 정치노선이 채택되리라는데는 반론이 거의 없는 상태다.
따라서 국내정책은 경제발전·정치개혁 쪽으로 가닥을 잡을 것이며 대외적으로는 대서방 관계 개선을 통한 탈고립주의 정책이 추진될 사능성이 크다. 또한 권력 역학구조상 라프산자니의 위상이 확고해질 것이 분명하다.
사실 온건 실리파의 득세는 이미 오래전부터 기미를 보여왔다. 지난 89년 6월 호메이니가 사망한 직후 전개된 치열한 「보혁대결」에서 라프산자니가 선거를 통해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실리시대의 맹아가 싹트기 시작했다는게 중론.
라프산자니는 89년 8월 조각과정에서 강경파의 핵심인 모타세미 내무장관을 경질하는 등 내각을 실용주의 진용으로 구축했다. 대외정책에 있어서도 90년 4월 레바논내 친 이란 과격단체가 3년간 억류했던 미국인 교수 폴 힐을 석방토록 한 것을 시작으로 91년말까지 미국인 인질문제를 완전 매듭짓도록하는 유화제스처를 보여왔다.
이란이 당시 인질석방 중재에 나선것은 서방과의 관계개선이 시급했기 때문. 라프산자니 대통령은 대이라크 8년 전쟁에서 비롯된 경제위기를 딛고 이란경제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서방의 기술과 자금이 필수적임을 강조했다.
미국을 「사탄의 나라」로 규정하는 종교적 압력속에서 라프산자니는 「인질석방서방관계 개선경제재건 기틀 마련」이라는 도식을 90년도에 이미 마련했다. 이는 달리 말해 당시부터 강경파의 입김이 약화되고 있었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이란이 조만간 미국을 비롯한 대서방 관계 개선을 하고 정치적 자유를 대폭 확대할 것인가. 국내 정치개혁과는 달리 대미관계에 대해선 신중론이 우세하다.
현지 분석가들은 강·온 구별없이 그 어느 출마자도 「미국과의 대화」를 공개적으로 주장하지 않은 점을 중시하고 있다. 실용주의 기류가 대세를 차지했지만 사회저변에 깔려있는 고 호메이니의 영향력을 간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란의 향후 대외노선은 미국 영국 등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서방국들과의 관계 개선으로 정리될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미영에 대해선 일정기간에 막후에서 밀접한 교류를 증진시키는 양동작전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관련,미 백악관 브레트 스코크로프트 안보 담당 보좌관은 이란의 온건파가 득세한 것에 대해 일단 환영의 뜻을 표했으나 라프산자니의 온건노선도 군사력 증강 노력으로 의문을 받고 있다며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이영성기자>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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