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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후 합병 소 칼리닌그라드/독영향권 서서히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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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후 합병 소 칼리닌그라드/독영향권 서서히 복귀

입력
1992.04.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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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 외부인출입 허용후 떠났던 독인들 속속귀환/시명도 쾨니히스베르크 환원추진… 주민들은 “기대” “우려” 엇갈려【베를린=강병태특파원】 독일이 패전으로 소련에 빼앗긴 발트해연안의 쾨니히스베르크(러시아령 칼리닌그라드)가 독일의 영향권으로 복귀하고 있다. 소련전역으로 흩어졌던 독일인들이 모여들고 파괴됐던 독일의 유적들이 복권되고 있다. 독일 함부르크와 연결되는 고속도로와 독일자본에 의한 산업기반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도시이름마저 쾨니히스베르크로 되돌리려는 움직임속에 『10년뒤 「독일령 쾨니히스베르크」가 될 것』이란 기대와 불안이 함께 전해진다.

구소련의 서쪽끝 쾨니히스베르크는 발트해와 폴란드,리투아니아에 둘러싸여 있지만 전쟁후 필라우(발티스크)인스터부르크(체리니아초프스크) 등 주변 독일영토들과 함께 러시아공화국 직할지로 병합됐다. 그리고 소련국가원수 칼리닌의 이름이 붙여져 소련 발트함대의 요새로 변신,외부와 단절됐다.

쾨니히스베르크는 13세기부터 게르만의 도시로 중세 발트해 일대의 한자(Hansa)무역동맹의 중심으로 번성했다. 동프러시아의 거점으로 화려한 왕성과 교회 대학 등이 자리 잡았고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1724∼1804)가 이곳에서 태어나 살다 죽었다.

독일제국의 1차대전 패전으로 쾨니히스베르크 서쪽의 발트해 연안 단치히(그단스크) 등은 폴란드령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독일본토와 분리된 쾨니히스베르크 일대는 독일영토로 남았다. 7백년 전통의 「독일인의 도시」였기 때문이다.

2차대전말 나치독일의 동쪽전략요충지 쾨니히스베르크는 영국 공군의무차별폭격으로 초토화된 채 소련군의 봉쇄공격에 45년4월초 수비군 사령관 오토 라시대장이 항복,일찍 적군의 수중에 들어갔다. 라시대장은 이 때문에 나치의 궐석재판에서 사형이 선고됐다.

이후 49년까지 쾨니히스베르크와 주변 독일영토의 독일인주민 1백20만명은 스탈린의 강제이주조치로 소련전역으로 흩어졌다. 대신 90만명의 소련인들이 이주했다. 이중 70%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로루시인이지만 소련의 1백여민족이 망라돼있다. 여기에 20만명의 소련군이 주둔하고 있다.

그러나 소련의 민주화와 독일통일은 칼리닌그라드를 쾨니히스베르크로 되돌리고 있다.

지난 90년 옐친의 러시아공화국은 45년간 군사봉쇄지역으로 묶여 있던 칼리닌그라드에 외부인 출입을 허용했다. 90년 7월에는 이 일대를 자유무역지대로 만들기 위해 경제특구로 지정했다.

칼리닌그라드 당국은 부서진 독일의 유적들을 복원하기 시작했다. 프러시아왕과 칸트의 동상이 제자리에 돌아왔고 병원등으로 바뀌었던 프러시아시대 교회들이 기능을 되찾았다. 박물관에서는 「독일역사문화전시회」를 열고 프러시아왕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독일을 향한 이 화해의 손짓은 회원 2천명의 「독일문화협회」가 결성되고 도시이름을 쾨니히스베르크나 칸트슈타트로 바꾸로 것을 시장이 주도해 추진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스탈린의 유산을 버리는 기회의 「독일인의 도시」의 명성만은 되돌려 주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수천명의 소련내 독일인들이 고향을 찾아 돌아왔다. 젊은 세대들도 중앙아시아의 민족분규를 피해 대거 이주하고 있다. 독일어가 다시 통용되고 제1외국어로 채택되고 있다. 독일의 영토수복은 경제분야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쾨니히스베르크와 발트3국은 독일측과 연구그룹을 결성,쾨니히스베르크와 발트3국을 묶어 2천년께까지 「발트한자지역」이란 자유무역지역을 창설하자는 계획을 마련했다.

독일의 자본과 기술로 산업 및 기반시설을 건설하고 서구식 금융체제 등을 갖추겠다는 이 구상은 독일북부와 발트연안에서 번성했던 한자동맹을 재현하겠다는 것이다. 첫 사업은 한자동맹의 중심 함부르크에서 단치히와 쾨니히스베르크 발트3국을 거쳐 상트 페테르부르크(레닌그라드)까지 연결되는 「한자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것이다. 함부르크와는 이미 직행항공노선이 개설됐다.

독일자본과 독일인들의 진출에 현지 주민들은 장미빛 기대와 「독일화」에 대한 두려움을 함께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발트연안 일대가 독일과의 경제적 연계를 유일한 활로로 모색하고 있는 상황에서 칼리린그라드가 독일인들이 주도하는 쾨니히스베르크로 변모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대세로 전망된다.

독일의 보수언론들은 이미 「쾨니히스베르크발」이라고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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