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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법개정시안 말하는 김기춘 법무장관(초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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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법개정시안 말하는 김기춘 법무장관(초대석)

입력
1992.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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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법익 부각… 법률선진화 큰획”/간통등은 사생활… 국가개입 부적절/보안법은 잠정적인 특별법… 형법포함은 옳지않아◇약력

▲경남 거제출생 53세 ▲서울법대·서울대 대학원 졸업(84년 법학박사 학위 받음) ▲64년 검사임관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 ▲대구지검·고검장 ▲법무부 연수원장 ▲검찰총장

30년동안 땜질을 계속해온 형법이 새옷을 갈아입게 됐다. 법무부가 지난 8일 입법예고한 형법개정 시안은 1953년 제정된 형법을 토대로 52개조항 신설,39개조항 삭제,1백1개조항 수정 등 대폭 손질을 한 것인데 공청회를 거쳐 5월안에 법무부 최종안을 확정하게 된다. 김기춘 법무장관은 「형법개정시론」 「조선시대형법」 등의 저서를 가진 형법전문가이기도 한데 그를 만나 형법개정시안에 대해 들어본다.

▼새로 만든 형법개정 시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현행 형법은 53년 제정된후 75년 국가모독죄가 추가됐다가 88년 삭제된 것을 제외하면 전혀 개정되지 않았습니다. 형법이란 국민생활의 죄와 법을 다루는 원초적인 법인 동시에 고도의 윤리성을 지니는 것이므로 시대의 흐름과 국민감정에 걸맞아야 한다는 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번 개정시안은 시대변화에 따라 컴퓨터 범죄·환경오염죄·인질범죄 등 37개 범죄를 신설했고,간통죄·혼인빙자간음죄 등 10개 범죄를 폐지했으며,사형선고를 신중하게 하도록 10개 범죄의 사형을 삭제했습니다. 징역형외에 재산형을 적극 활용하도록 16개 범죄에 벌금형을 추가했고,벌금형에도 집행유예를 두었으며,집행유예시에 보호관찰·사회봉사 명령·수강명령을 가능케한 것도 특징입니다.

무엇보다도 형법체제를 종래에 총칙·국가적 법익·사회적 법익·개인적·법인 순으로 배열하던 것을 총칙·개인·사회·국가의 순으로 배열하여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개인의 존엄성을 부각시키고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40년동안 크게 달라진 형벌범죄 이론을 널리 참고하여 우리나라의 법률문화를 한단계 올리는 획기적인 작업을 했다고 자부합니다』

▼남북관계 진전에 따라 국가보안법 개·폐논의가 일고 있는데 이번 개정작업에 국가보안법은 포함되지 않았습니까.

『국가보안법을 적절히 녹여서 형법에 수용하자는 일부 의견도 있으나,국가보안법은 남북관계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유동적이고 잠정적인 특별법이므로 기본법인 형법에 포함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국가보안법은 남북관계가 진전되면서 91년 5월에 이미 의미있는 개정을 한바 있습니다. 반국가단체 등에 대한 찬양 고무·금품수수·잠입탈출·회합통신 등(5조∼8조)의 행위를 했다해도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라는 주관적 요건이 입증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도록 개정한 것입니다.

또 남북교류 협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누구든지 통일원의 승인을 받으면 교류·왕래·합작 등을 할 수 있으므로 이 시점에서 통일을 지향하는 건전한 활동을 법이 막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법을 더 완화하여 북측 이데올로기를 선전하는 것까지 허용하라는 것은 앞으로 남북상호주의에 입각하여 다룰 문제입니다. 남북공동 법률위원회를 만들어 양측 법률을 검토·개정하자는 제안을 우리측이 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북한은 우리처럼 국가보안법을 따로 두지 않고 형법에서 다루고 있지않습니까.

『헌법,노동당 규약,형법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북한형법에는 52조 공민의 조국반역죄,53조 군인의 조국반역죄,56조 반동선전 선동죄,62조 사회주의국가 반대 및 혁명적 인민적 대죄 등이 있는데 모두 「사형 및 전재산몰수」라는 중형을 매기고 있습니다. 북한 형법은 자유세계의 기준으로 볼 떼 법의 카테고리에 넣기 힘든데,유추·소급·확장해석을 금지하는 처벌법의 원칙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우리의 국가보안법을 계속 문제삼는 것은 사실 말이 안되는 것입니다』

▼간통죄와 혼임빙자간음죄 폐지에 대해서는 찬반론이 팽팽한데,폐지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하시겠습니까.

『간통죄는 지금까지 위자료 청구와 협박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측면이 강했습니다. 간통죄 고소의 처리를 보면 70%가 수사과정에서 고소취소 되고,나머지 30%도 재판과정에서 대부분 취소되는데,이처럼 법과 공권력이 일방 배우자의 분풀이나 위자료 받는 일에 이용되고 있다는 것은 깊이 생각해봐야할 문제입니다. 여성들이 특히 폐지반대가 많은데,사실 간통죄로 더많이 처발받는 쪽은 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정법원 통계를 보면 전체 이혼사유중 배우자의 부정이 48%를 차지하며,그중 남편의 부정이 26%,아내의 부정이 22%입니다. 현실에서는 남자의 부정이 훨씬 많은데도 남녀의 고발에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은 아내는 남편의 부정을 많이 참지만 남편은 아내의 부정을 고발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간통죄 폐지에 대해서는 형법개정심의위원들 사이에서도 격렬한 논쟁이 있었는데 소위에서는 7대 5,전체회의에서는 16대 7로 폐지쪽이 우세했습니다.

혼인빙자간음죄도 이제는 여성이 자신의 순결을 자기 책임아래 지킬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폐지가 옳다고 봅니다. 자기의 정조를 자기가 지키지 못하고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을 국가가 편들 수는 없습니다.

성은 내밀한 사생활의 문제이므로 법이 개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프랑스 영국 이태리 일본은 47년에,독일은 69년에 간통죄를 폐지했고 미국의 몇개주에 남아 있으나 사문화된 상황입니다. 그들 나라에서는 중혼은 처벌하되 성문제는 개인의 윤리에 맡기고 있습니다』

▼이번 개정시안에 낙태허용 조항이 신설됨으로써 우리나라는 이제 비로소 낙태문제에 진지하게 접근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묵인해온 낙태를 앞으로는 법조문에 따라 처벌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봐도 좋겠습니까.

○불법낙태 처벌 마땅

『지금까지 덮어두고 있던 낙태문제를 건강한 의료의 일부로 허용한다는 점에서 큰 전환이라고 생각합니다. 모체의 건강상 문제,태아의 심각한 손상,성폭행과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 등은 임신 20∼24주 이내에 한해 낙태시킬 수 있다는 조항이 신설되었는데 그밖의 낙태에 대해서는 마땅히 처벌하여 「낙태왕국」이라는 오명을 씻어가야 할 것입니다』

▼성폭력이 크게 증가하고 근친강간도 늘어나고 있으므로 성폭력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습니다. 특히 성폭행한 의붓아버지 살해사건을 계기로 강간을 비친고죄화하고,직계존속 고발을 허용해야 한다는 등 구체적인 주장이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런 취지에 충분히 공감하며,기술적인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 그런 방향으로 노력할 생각입니다. 처벌법으로서가 아니라 예방법으로도 종합기능을 할 수 있는 특별법 제정을 구상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성폭력에 관해서는 수사·증인신문·재판·사후관리 등에서 고유한 기법이 필요하며,통상의 절차와 다르게 취급돼야 한다는데 동의합니다.

그러나 비친고죄화하자는 것은 피해자가 다시 입게될 이중의 피해를 고려할 때 선뜻 동의할 수 없습니다. 흉악한 성범죄에 대해서는 이미 일부 비친고죄화 했으나,성범죄의 처리에서 수사와 처벌의 편의만 생각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직계존속 고발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은 실제로 자녀에게 인간이하의 행동을 하는 부모가 늘어나는 현실에서 마땅히 고려해야할 주장입니다. 앞으로 형사소송법을 손질할 때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할 것입니다』

▼성폭행 의붓아버지 살해사건은 정상을 참작할 때 좀더 진보적인 구형과 판결이 나와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현행 형법은 직계존속 살해에 대해 무기나 사형의 무거운 처벌을 규정하고 있는데,그 사건의 1심구형과 판결은 정상을 참작하여 형량을 낮춘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법관 개개인의 철학의 표현이 형량인데,정상을 참작하더라도 살인을 정당화해서는 안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직계존속 살해에 특별히 무거운 형량을 정한 것은 평등권 위반이라는 판결이 74년 일본에서 나온적이 있고,우리도 이번 개정시안에서 존속살해 형량을 「무기나 사형」에서 「징역7년 이상」으로 고쳤습니다. 일반 살해는 「징역 5년이상」이니 2년을 더 무겁게 한 것입니다. 직계존속을 고발하거나 살해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우리 고유의 문화와 범죄의 동기를 함께 고려해야 하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형법전문가로서 형법개정 시안에 어느정도 만족하십니까.

『법은 현실과 이상의 타협의 산물이므로 완벽하지는 못하다 해도 90%이상 만족합니다. 그동안 바꾸지 말아야 할 헌법은 자주 바꾸고,유연성을 지녀야할 형법은 손을 안댄채 특별법으로 대처해 왔는데,이제 누더기 옷을 벗고 비단옷으로 갈아입는 기분입니다. 7년이나 걸린 이 작업을 형법을 공부한 법무장관으로서 마무리하게 돼 기쁩니다』<대담 장명수 편집국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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