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 청산” 기치 브라운·페로 호응 높아【뉴욕=김수종특파원】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미국사회에 기존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정치혐오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성난 유권자의 분노로 불리는 정치불신 현상은 집권 공화당의 표밭인 보수진영은 물론 민주당 아성인 진보성향의 유권자층에도 거세게 일고있다. 민주당 예선에서 「워싱턴의 부패한 정치」를 싸잡아 비난하고 있는 제리 브라운 후보가 도중하차 하지 않고 버티는 것은 이러한 성난 유권자의 지지때문이다. 또한 텍사스의 억만장사 로스 페로가 무소속으로 11월 대통령선거에 뛰어들 의사를 비추자 불과 3주만에 1백만통의 지지전화가 쇄도한 사실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유권자들의 정치혐오는 우선 집권당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그동안 세계최고의 부국으로 여겨왔던 미 국민은 미소 냉전체제가 종식된후 스스로를 되돌아본 결과 세계 제1위의 채무와 사회체제 혼란만 남은 미국을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대량실업과 인종갈등,에이즈의 창궐,마약과 범죄의 만연 등 소위 「미국병」이 심화되고 있는데 대해 기존 정치권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
이때문에 부시 대통령의 걸프전 승전에 갈채를 보냈던 미국은 1년만에 그의 국내정책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그가 지난 2월 뉴햄프셔 예비선거에서 뷰캐넌 돌풍에 휘말린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민주당 진영의 사정은 더욱 복잡하다.
워싱턴의 로비이스트에 묶여 있는 미국을 국민에게 되돌려 주겠다는 브라운에게 미 진보성향의 유권자층이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뉴욕 타임스가 지적했듯이 브라운은 성난 유권자를 대변하는 「분노의 후보」인 셈이다.
그러나 뉴욕예비 선거결과로 빌 클린턴의 지명은 이제 기정사실화되고 대통령 선거전은 부시와 클린턴의 대결로 굳어지고 있다.
변수는 로스 페로이다. 3·24총선에서 정주영씨의 정계출현을 연상케 하는 이 억만장사의 백악관 꿈은 남가일몽일 수도 있지만 유권자들의 정치불신을 고려하면 11월 대선에서 캐스팅 보트도 될 수 있다는 것이 정치평론가들의 예측이다.
페로는 현재 선거자금으로 자신의 돈을 1억달러이상 쓸 수 있다고 호언하고 있는데 이 액수는 부시도 클린턴도 따라오지 못할 액수이다. 그는 특히 선거운동을 위해 연설문 작성자나 분장이 왜 필요하냐며 솔직하게 유권자에게 호소할 것이라고 말해 기존 정치체제에 발반하는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미국 역사상 제3당이나 무소속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된 예는 없다. 지난 50년간 제3의 후보가 10%이상 득표한 예는 1968년 조지 윌리스 당시 앨라배마 주지사의 13.5%가 유일하다.
페로의 변수는 부시와 클린턴 대결에서의 캐스팅 보트역할이다. 만약 부시가 인기를 회복하지 못하고 클린턴과 막상막하의 접전을 벌일 경우 페로의 출현은 부시에게 결정타를 가할 수 있다. 페로가 텍사스 같은 몇개주에서 보수성향의 공화당표를 대량 잠식해 부시를 밀어뜨릴 수가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912년 제28대 대통령선거에서 26대 대통령을 지내고 물러났던 공화당의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후계자인 윌리엄 태프트 대통령(27대)의 정책에 불만을 품고 제3당을 만들어 후보로 나서 현직 대통령보다도 많은 득표를 했으나 공화당 표가 분산됨으로써 우드로 윌슨 민주당 후보가 어부지리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또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페로가 텍사스 등 한 두개 주에서 승리하고 부시와 클린턴이 각각 투표인단 과반수에 미달하면 의회에서 대통령을 선출하는 사태가 20세기 들어 처음 발생하게 된다.
새로운 정치물결이 올해 선거에 큰 영향을 끼칠는지는 아직 점치기 어렵지만,달라진 미국의 현실에 맞는 정치 지도자를 찾고 있는 미국인의 변화심리는 날이 갈수록 강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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