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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년대 국민의 선택/정달영(화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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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년대 국민의 선택/정달영(화요칼럼)

입력
1992.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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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혜안인 김경원박사는 지난 연초 한국일보 신년특집을 발제하는 글에서 「1992년에 있을 선거는 2000년대 한국의 미래를 선택하는 일」이라고 쉬운 말로 연설했었다. 덧붙여서 강조한 것은 유권자의 양식과 책임이었다.지난 3·24총선은 김 박사가 말한 올해의 선거들중 첫번째 이벤트였던 셈인데. 그 총선결과를 놓고 「2000년대 선택」의 역사적 향방까지를 논의하기는 다소 이른 느낌이 없지 않다.

○민심은 물갈이에

그러나 혁명적 소용돌이가 세계사의 흐름을 크게 뒤바꾸고 있는 작금년을 기해 「21세기는 이미 시작된 것」이라는 평가에 설득력이 있고,그같은 세계사의 흐름위에 얹힌 한국 역시 혁명적 전환기를 외면할 수 없다는 시각에서 본다면 3·24총선의 결과가 함축하고 있는 「국민의 선택」은 매우 중대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올해는 적어도 대통령선거 만큼은 연말안으로 반드시 치르게 되어 있으므로,국민은 또 한번의 선택을 연속적으로 요구받는 상황이다. 올해의 선거가 단순하게 특정한 인물이나 특정한 정당을 선택하는 사사로운 투표행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나라의 미래를 선택하는 엄중하고도 공적인 「국민의례」와도 같은 것이 되어야 한다는 뜻을 이해하게 된다.

지난 3·24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에 대해서는 많은 분석과 의견이 나와 있다. 경제를 비롯한 민생에 대한 불만이 강력하게 표출되었다. 3당합당의 기만성에 대한 엄혹한 심판이었다. 기관원의 흑색선전사건이나 군부정투표의혹 등 50년대식 민주화역행에 대한 분노였다… 등이 그것들이다. 이밖에도 또 여러가지 이유들이 「민자당 참패」를 설명한다.

그러나 거대여당에 패배를 안겨준 「국민의 선택」의 진짜 메시지는 「과감한 물같이」에 대한 갈망이었다고 나는 믿는다. 너무나 오랫동안 대면하고 살아온 낡은 얼굴들에 대한 국민의 염증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는 2년전 짐싸들고 식솔 이끌고 여당 울타리 안으로 들어갔던 지도자들의 오늘의 「판세」가 설명해 준다. 어떤 이는 자신의 특정지역 안에서 조차 「인기가 별로」였음이 드러났고,어떤이는 특정지역 안에서만 「인기 있음」이 밝혀졌다. 야당이 절대적으로 우세한 「싹쓸이 지역」안에서도 이른바 「비판적 지지론」이 고개를 들었음은 확실히 새로운 경향이다. 특정지역 안에서만 인기있다는 사실은 지역주의를 말하기 이전에 지도자로서 결격일 수 있다. 그래서는 「국민의 지도자」일 수가 없겠기 때문이다.

○표는 누가 찍길래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인다. 겸허하게 국정에 임하겠다』­대강 이런 뜻으로 소감을 말했었다. 새로운 여소야대정국 출현에 대해 여당지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하늘」을 둘러댔다. 그로부터 꼭 2주일이 흘렀다. 그 2주일동안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가.

2주일이 아니라 2개월,2년이라도 흐른듯한 느낌이다. 건망증이 너무 심하다. 그날의 「국민의 선택」은 망각의 늪속에 처박고,「하늘의 뜻」을 말한 바로 그 시각부터 천심도 민심도 안중에 없어졌다. 국민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외면한 채,이리 몰리고 저리 쏠리며 대권 줄서기에 바쁘다. 국민여러분께서 보시다시피!

선거후유증 처리마저 팽개치고 오로지 대권보따리만을 싸안고 다니는 정치지도자들을 향해서 국민들은 아마도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이다.

『누가 표 찍어준다고 했길래!』

언제나처럼 국민의 소외가 문제다. 대통령후보만 되면 일은 대충 끝나는 것처럼 행동하는 태도는 국민을 우롱하는 짓거리가 아닐 수 없다. 오만방자가 따로 없다. 후보가 되고도 그야말로 「국민의 선택」의 순서가 또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국민의 선택」이 다름아닌 하늘의 뜻이다. 표에 담긴 민심이 무서운 줄을 정치지도자들은 깨달아야 한다.

○또 하나의 대세론

세계는 요즘 곳곳에서 선거열풍이 불고 있다. 한국의 선거에서만 「이변」이 연출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거의 비슷한 몸살을 앓는다.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 모두가 그들 자신의 2000년대를 「선택」하는 길에 진지하게 나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3·24총선에서 낡은 얼굴들,낡은 수법들을 거부하고 싶었던 민심은 지금 전개되고 있는 대권후보 경쟁양상을 보면서 다만 어처구니없어 할 뿐이다. 정책과 비전과 논쟁은 없이 흥정과 연줄과 돈줄에 얽혀 돌아가는 이런 모양들을 더 이상 보고 싶어하지 않는 국민의 마음도 또 하나의 「대세론」이다.

「국민의 선택」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지금도 아니다. 더 참신하고 더 희망있는 2000년대를 맞이해야 하지 않겠는가.<편집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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