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의 기업자금유용문제를 놓고 정부와 현대그룹이 뜨거운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양측은 신문광고와 기자회견을 통해 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어 자칫하면 이 문제가 법정다툼으로까지 비화될 조짐이다.
이번 사건의 전개과정을 지켜보면서 어딘가 정부측의 일솜씨가 서툰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게된다.
사실 국민당의 인적 물적 뿌리가 현대그룹이고 그 동안 엄청난 자금이 각종 경로를 통해 흘러들어갔으리라는 심증은 한국 국민이라면 거의 모두가 「확신」하고 있는 일이다.
따라서 기업자금이 정치자금화하는 일이 없도록 정부가 현대그룹의 자금관계를 조사하고 위반사실에 대해 강력제재하겠다는 기본방침은 백번 타당하다.
또 이번 사건에서 단순한 형식논리로 볼때 현대전자가 이유야 여하튼 은행대출금을 용도외로 지출했다는 은행감독원의 지적은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정부는 보다 신중해야했다.
그 동안 국민당 창당을 둘러싸고 정부와 현대그룹이 벌여왔던 각종 갈등문제에 있어 「원칙」을 지키려는 정부의 의지가 왕왕 「제재」로 비쳐지곤 했던 것이 유감스럽지만 오늘의 정치사회현실이 아니었던가.
실제로 이번 사건에 있어서도 『결국 대출금을 통째로 빼돌린 것은 아니니 별문제가 없지 않는가』하는 상당수 국민들의 소박한 법감정과 함께 정부가 또 다시 현대를 때려잡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도 일각에서는 일고 있다.
현대그룹이 기업자금을 정치자금으로 유용했다면 이는 중대한 위법행위로 반드시 적발해내 응징해야할 일이다.
그런데 은행감독원은 두차례의 특별검사를 통해 이처럼 「큰건」을 잡아냈으면서도 어째서 이를 충분히 다듬어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가두지 못하고 발표를 서둘렀을까.
항간에 떠도는 소문대로 「한건 했다」는 흥분때문에 좀더 치밀한 판단을 못했던 것일까.
실제로 은행감독원의 조사결과발표는 현대전자의 당좌계좌에서 국민당계좌로 들어간 자금의 용도가 무엇이었느냐에 대해 현대측의 소명을 들은 후에도 늦지 않았었다.
굳이 정경분리원칙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현대와 국민당이 관계를 깨끗이 정리해야 한다는 것은 국민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 일이고 이에 대한 정부의 감시감독은 감정적이거나 일시적인 차원이 아니라 차분하게 지속적으로 행해져야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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