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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일야…」 장지연선생 애국뜻 기리며/묘소돌보기 22년 “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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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일야…」 장지연선생 애국뜻 기리며/묘소돌보기 22년 “정성”

입력
1992.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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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현동국교직원 서해정씨/묘역손질 하루도 거르는일 없이/「신문의날」 참배객 행렬 “기쁜날”「시일야 방성대곡」. 분노의 필봉으로 민족의 한을 터뜨린 위암 장지연선생의 뜨거운 애국정신과 기개가 한 국민학교직원의 손으로 전수되고 있다.

경남 마산시 현동국교 서무과직원 서해정씨(52)는 지난 71년부터 학교옆 독뫼산에 모셔진 위암의 묘소를 조부의 묘보다 더 정성스레 보살펴고 오고 있다.

1905년 11월 17일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돼 주권이 기우는 것을 통탄,3일뒤 당시 황성신문에 사설을 써 민족정신을 깨우친 선각자의 족적을 흠모해온 서씨는 현동국교로 부임해온뒤 묘소가 학교에서 3백여m 떨어진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돌보기 시작했다.

잡초와 기사덤불을 걷어내고 묘역을 단장했다. 주변의 잡목가지를 치고 묘비를 닦는 등 묘소손질을 지금까지 하루도 거른일이 없다.

21년째 위암의 얼을 받들며 살아온 서씨는 동네 어른들을 통해 비문을 해독하고 수많은 자료를 구해 연구를 해와 지금은 위암의 생애와 사상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돼있다.

서씨는 『매일 묘역을 돌보다보니 위암선생의 생전모습이 저절로 떠오르게 된다』며 『선생의 인품을 조금이라고 체득하기 위해 노력하게됐다』고 말한다.

서씨가 묘소를 관리하는 사실이 알려지자 현동국민교에서는 73년부터 선생의 얼을 기리는 교내백일장을 개최하게 됐다.

교내백일장은 80년 상품을 후원해주던 단체의 지원이 끊겨 7회로 끝났으나 지금도 매주 토요일이면 전교생이 묘소에 참배하고 주변을 청소하고 있다.

또 경남도는 지난 83년 12월 위암의 묘소를 경남도 문화재자료 제94호로 지정했고 89년에는 위암 기념사업회가 결성되기도 했다.

그러나 위암의 묘소를 찾는 참백객은 거의없어 서씨는 매년 4월7일 신문의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나마 위암의 뜻을기다리는 참배객들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서씨는 『5년전 떨어져나간 묘소의 보호철문 보수계획이 올해는 꼭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안타까워 했다.

위암은 사설게재 사건으로 투옥돼 이듬해 1월 출옥했으나 그 이후에도 민족정신을 꺾지 않은채 독립운동을 계속하다 1921년 10월2일 경남 마산시 수성동 45 장남 재식씨집에서 58세를 열기로 운명했다.<마산=이동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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