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재판소 놔두고 왜 안보리에서 다루나/「이라크」완 차원달라… 사법적 판단에 맡겨야”【베를린=강병태특파원】 유엔안보리의 대리비아 제재조치와 리비아의 강경대응으로 위기상황이 조성되고 있는 가운데 독일언론들이 안보리결의의 합법성 문제를 지적하고 나서 주목된다.
독일 언론들은 미국과 영국이 88년 발생한 미 팬암기 폭파테러의 배후로 이란과 시리아를 지목해 오다가 갑자기 리비아의 소행이란 결론을 내놓았을때부터 의문을 제기했었다.
즉,양국 모두 테러행위에 대한 응징보다는 선거를 앞둔 국내정치이용 효과를 노리고 군사행동 대상을 찾는 과정에서 걸프전 수행에 협조한 시리아와 이란대신 만만한 리비아를 희생양으로 선택했다는 의혹이었다. 리비아의 「진범」여부에 대한 이같은 의혹은 미국내에서 조차 가시지 않고 있다.
이같은 상태에서 취해진 안보리의 제재결의에 대해 독일언론들은 무엇보다도 안보리가 온갖 「근거」를 동원하면서도 정작 민항기 테러사건에 최우선적으로 적용되는 몬트리올 협약에 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않은 점을 지적하고 있다.
몬트리올 협약은 리비아가 이 사건을 국제사법재판소(ICJ)에 끌고간 근거이자 ICJ의 심리에 역시 핵심이 되는 국제협약이다.
이 협약7조에 따르면 항공기 테러범의 신병을 확보하고 있는 국가는 재판권 행사를 주장하는 다른 나라에 신병을 인도하거나 자국내에서 재판에 회부할 수 있다. 그리고 신병인도 문제를 둘러싸고 이견이 있는 경우에는 국제중재나 ICJ를 통해 해결하도록 협약14조에 규정돼 있다.
따라서 리비아가 이 사건을 ICJ에 제소한 상태에서 안보리가 제재조치를 결의한 것은 몬트리올 협약 및 국제법상 최고의 사법기구인 ICJ의 권능과 관련해 합법성이 문제된다는 것이다.
유사한 국제분쟁에서 한 당사국이 ICJ와 유엔안보리 양쪽에 제소한 전례는 있다. 미국도 이란에 의한 테헤란 주재 미대사관 인질사건 당시 ICJ와 안보리에 동시에 제소했었다.
그러나 분쟁의 한 당사국이 안보리에 사건을 끌고가고 다른 당사국은 ICJ에 제소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같은 유엔기구인 안보리와 IJC의 권능과 실제 처리과정에 대한 새로운 선례를 남기게 됐다.
물론 미국은 리비아가 사건을 ICJ에 끌고 간 것을 사간벌기 책략으로 간주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ICJ가 이 사건에 관한 최종판단을 내리는데는 길면 2년정도가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이 때문에 부시 대통령은 『ICJ가 리비아에 대한 제재에 장애가 될 수는 없다』고 공언했다.
실제 ICJ판결과 안보리 결의는 상호배척적인 것은 아니다. 유엔총회와 안보리간에는 유엔헌장에 따라 안보리가 특정 국제분쟁에 대해 관할권을 행사하면 총회는 배척되지만,ICJ와 안보리는 각기 독자적인 권한을 갖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안보리는 정치적 고려에 따라 움직이는데 반해,ICJ는 사법적 판단을 하는 기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리비아에 대한 안보리 결의는 기본적으로 합법성 여부와는 다른 차원에서 이해될 수 밖에 없는 셈이다.
지난 2일 대리비아 제재결의에 항의하는 리비아 군중이 트리폴리 주재 외국공관을 공격한 사건도 이같은 배경을 이해하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이날 나타난 리비아 국민의 대안보리 감정은 『안보리는 리비아를 재개할 자격이 없다」는 인식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독일언론들은 이번 대리비아 제재결의는 이라크에 대한 제재결의와는 다른 기준에서 평가돼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쿠웨이트를 침략한 이라크와 테러혐의를 받고 있는 리비아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는 지적이다.
이와관련,독일언론들은 리비아 제재에 찬성한 안보리이사국의 대부분이 미국의 이니셔티브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을 피해 소극적으로 지지를 표시했을 뿐이라고 전하고 있다.
이같은 소극적 지지는 강경조치를 위협해 온 미국이 리비아에 타격이 클 원유수출 봉쇄는 빼 놓은채 민항기 운항금지 무기금수 리비아 외교공관원 감축 등의 실효성없는 조치에 만족해야 했던데서 드러났다. 프랑르푸르터 알게마이네지는 이를 『리비아의 아킬레스건은 못 건드린 상징적 제재』라고 표현했다.
아울러 미국은 이집트 등 아랍국가들이 리비아에 대한 강경제재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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