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오수 「세탁」환경파수꾼/오염성분 따라 처리달리/공정개선 위해 수시실험/물만 보면 어떻게 정화할까 골몰대도시 빌딩이 고층화,대형화 되면서 여기서 쏟아져 나오는 더러운 물도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 쓰고 버린 이 물들이 그대로 강에 흘러들어가면 환경오염이 어느정도에 이를 것인가는 굳이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무심하게 물을 쓰고 버리는 같은 빌딩내 사무실 직원들조차 그 존재를 잘 모르고 있으나 건물의 오수를 정화해 배출하는 책임을 맡고있는 「빌딩 수질관리기사」들이야말로 최일선에서 일하는 「환경수호의 첨병」이다.
우리나라의 최고층 빌딩인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한강으로 방류되는 1일 평균 1천5백톤의 물을 종합관리 하고 수질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을 지는 사람은 뜻밖에도 빌딩의 크기에 걸맞지 않게 가냘픈 체구를 가진 23세의 미혼여성 김순주씨다.
지난 90년 7월 63빌딩 관리회사인 「대생개발」에 입사,수질관리 업무를 맡아온 김씨는 이제 집에서나 길에서나 더럽고 냄새나는 물을 보면 눈살을 찌푸리기 전에 『어떤 방법으로 정화시킬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되는 「프로」가 됐다.
김씨의 일은 빌딩내 사무실·화장실·식당가들에서 버린 물을 일단 각 용량이 50∼1백톤인 수조 18개에 분류해 가두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수조에 보관됐던 물은 오염성분과 정도에 따라 각기 다른 정화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특히 기름기가 많은 식당오수는 일반 오수보다 훨씬 까다롭고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식당오수는 따로 가압부상 설비라는 특수장치를 거치는데 이 기계는 공기방울을 이용,기름성분을 수면위로 띄우고 응집시킨뒤 걷어낸다.
이어 생물학적 처리를 통해 적당량의 산소를 공급해주고 온도를 조절,BOD(생물학적 산소요구량)를 기준치 이하로 낮추는 작업을 한다.
『이 과정은 「미생물활성화탱크」에서 이루어지는데 이곳의 미생물들이 오염의 주범인 과다한 양의 물속 유기물들을 먹어치운다. 이 처리가 끝나면 처음 BOD 2백∼2백50PPM에 이르던 물이 60PPM 이하로 떨어져 방류가능한 수준이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가격만 해도 70억원대를 상회하는 고가장비를 통해 24시간 쉬지 않고 이뤄지는데다 오수를 처리하는 탱크들이 깊이가 4m 이상이나 되는 등 위험요소도 도처에 깔려있어 김씨의 일상업무는 항상 초긴장 상태다.
각종 장비 및 설비가 제대로 작동되는가를 수시로 살펴야 하고 처리과정중에 투입되는 4∼5종의 화학약품의 적정량을 조절해주는 것도 모두 김씨의 몫이다.
고가장비를 다루는 일 외에도 김씨는 수시로 빌딩내 지하 2층 실험실에 내려가 처리과정중 여러단계에서 표본으로 추출된 오수의 BOD,COD(화학적 산소요구량),PH(수소이온지수) 등을 측정한뒤 결과에 따라 공정을 합리적으로 개선하고 정화효율을 높이는 새로운 방법을 연구한다.
김씨는 입사직후 홍수로 인해 한강물이 방류통로를 따라 역류해 들어오는 바람에 설비시설들이 침수 직전까지 갔다가 임시펌프로 밤새도록 물을 퍼내 간신히 위기를 넘겼던 기억을 갖고있다.
김씨는 『당시 깨끗하게 지키려 했던 한강이 되레 엄청난 위력으로 도전해 왔을때 화도 났지만 자연에 대한 겸허함을 배우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지난 89년 서울보건전문대 환경관리과를 졸업한뒤 같은해 9월 환경관리 기사 수질2급 자격증을 따낸 김씨는 자신의 일에 남다른 보람과 의무감을 갖고있다.
감시의 눈도 많고 법적 규제도 강력한 공장 폐수에 비해 빌딩오수는 사실상 환경감시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으므로 그만큼 할일이 더 많고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김씨는 『서울시내에만 해도 정화설비를 갖춘 빌딩이 2천여개가 넘지만 설비를 가동시키지 않거나 경비절감을 이유로 중간과정을 생략하는 사례도 많은 것으로 알고있다』면서 『기름이 섞인 오수를 따로 처리하는 설비를 갖춘 곳은 손으로 꼽을 정도』라며 실정을 얘기했다.
김씨는 「아무도 안보면 그만」이라는 일부 빌딩주들의 부도덕성이 수질오염의 주범이라고 말하면서도 『이미 더러워진 물을 깨끗하게 하는 것 보다는 물을 될 수 있는한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오염요소를 미리 제거해주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고 충고도 잊지않았다.<고태성기자>고태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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