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어느덧 일자리가 풍부한 나라가 되어 많은 외국인들이 몰려오고 있다. 일자리를 찾아왔음이 분명한 외국인들,주로 아시아인들이 거리를 기웃거리며 다니는걸 볼때마다 우리의 어제를 생각하게 된다.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해외취업이 시작된 것은 광부·간호사·전기기술자 등이 서독에 취업했던 60년대 초이다. 워낙 국내에 일자리가 부족하고 돈이 부족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63년 정부가 처음으로 서독 파견 광부 5백명을 모집했을때 경쟁률은 6대 1이나 됐다. 월6백마르크(1백62억달러)의 임금에 고학력자들까지 몰려와 합격자의 18%가 대졸이었다.
서독으로 떠나는 광부나 간호사들중 30% 정도가 기혼자였다. 처자를 두고 돈벌러 가는 아버지들도 서러웠지만,어린 자녀들과 헤어져야 하는 어머니들의 고통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그들은 낯선 이국에서 적응하는 어려움뿐 아니라 3년씩 가족과 헤어져 살아야 하는 그리움과 싸웠다.
남편이 실직해 살길이 막막하거나 홀몸으로 자녀들을 키워야 하는 부인들은 궁리끝에 간호보조원 교육을 받고 서독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동생들의 학비를 벌기위해 서독으로 떠나는 누나들도 있었다.
눈물로 김포공항을 떠난 그들은 한국인 특유의 강인함으로 잘 적응했지만,실패한 사람들도 있었다. 어린 자녀들을 못잊어 괴로워 하며 직장에도 적응하지 못해 끝내 자살한 간호사들도 있었다. 그것이 불과 30년전 우리의 해외취업자들이 겪었던 가슴아픈 역사이다.
최근 우리나라에 돈 벌러 왔던 필리핀인들이 서로 싸우다가 한사람이 죽었고,필리핀에서 달려온 고인의 아내는 돈이 없어 병원에 안치된 시신을 찾아가지 못한다는 딱한 기사가 실렸는데,시신 인수비용 2백만원을 희사한 사람들이 있어 화제가 되고있다(한국일보 조간 27일·28일자). 서울 송파구 이삿짐센터 업주 친목계원인 채용진·서의석씨는 『어려서 고향을 떠나 객지생활의 어려움을 겪은 사람으로서 돈벌러 낯선 나라에 왔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과 그 가족의 어려움을 못본체 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고 한다.
국내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들의 대부분은 불법취업자들이다. 불법여부를 떠나서 그들의 불행을 도우려는 한국인들의 따뜻한 마음은 바로 우리의 어려웠던 날들로부터 오는 것이다.<편집국 국차장>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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