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의 향개발 미의 완성 창출/후각식별력 보통사람의 40여배/감기는 금물… 외국엔 코보험도/최근 환경의식 높아져 자연향선호 추세『훌륭한 외모에 멋진 옷을 차려입은 여성이라도 자신의 독특한 향을 지니지 못하면 그 아름다움은 미완성입니다』
태평양화학 향조연구실 한상용 실장(39)의 「미의 철학」에는 12년 경력 베테랑 조향사(perfumer)의 직업의식이 진하게 배어있다.
조향사란 수많은 종류의 향을 후각으로 식별,성분과 함량을 분석해내고 방향물질을 합성해 새로운 향을 창조하는 「향의 마술사」다.
현재 쓰이고 있는 향의 원료는 천연방향물질 5백∼6백종,합성물질 3천여종을 포함,약6천여종. 조향사라면 이 가운데 자주 쓰이는 2백여종 이상의 향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경험과 훈련을 쌓으면 1천여종 이상의 식별도 가능하다. 이에 비해 일반인이 구별할 수 있는 향은 단 5종에 불과하다.
향료산업이 발달한 외국의 경우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이 마련돼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화장품이나 향료제조회사가 화학전공자들을 대상으로 후각테스트를 실시,조향사를 뽑아 자체연구소에서 훈련시키는데 그치고 있다.
트라이앵글테스트라 불리는 후각테스트는 석장의 시험지중 두장에는 같은 향,다른 한장에는 유사한 향을 발라 구별하도록 하는 것.
한실장도 서울시립대 화학공학과를 졸업,80년 태평양화학에 입사했다가 테스트를 거쳐 조향사로 발탁됐다.
우리나라에서 조향사는 태평양,럭키,한국화장품과 향료제조업체인 한국화농에 근무하는 20여명정도이고 IFRA(국제향료기구)가 인정한 정규코스를 거쳐 국제조향사 자격을 얻은 사람은 한실장을 포함,4명에 불과하다.
한실장은 『조향사는 테크닉을 지닌 예술가』라고 표현한다. 음악가가 소리로,화가가 색채로 자신의 예술적 심상을 형상화하는 것처럼 조향사도 향을 통해 미의 세계를 창조해 낸다는 것.
『프랑스의 한 조향사가 남태평양의 피지섬을 여행한뒤 환상적인 자연에 도취돼 만들었다는 향수 「피지」의 향을 맡으면 정말로 가보지 못한 피지섬의 아름다운 풍경이 머리속에 그려진다』는 것이다.
수천개의 향료병,실험기구들이 즐비하고 늘 갖가지 향들이 코를 찌르는 20평 남짓한 연구실에서 조향작업 대부분이 이루어지지만 한실장에겐 눈에 보이는 모든 공간이 일터다.
항상 열려있는 후각을 통해 감지되는 수많은 냄새들과 거리를 지나는 젊은 여성들의 독특한 화장법 등에서 새로운 향을 착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탈취기술이 발달되지 못했던 화장품 산업초기엔 오일,왁스류,동식물성 추출물등 화장품원료를 배합했을때 생기는 악취를 없애기위해 강한 향을 사용했다. 화장품의 주요 소비자층이 유흥업소 종사자들이었던 것도 강한 향이 유행한 한 원인이 됐다.
그러나 요즘은 탈취기술 발전과 화장품대중화에 힘입어 옅은 향이 주로 사용되고 다양한 향수를 사용함으로써 향에 대한 욕구를 충족하는 경향으로 변했다.
최근엔 환경오염에 대한 위기의식이 화장품업계에도 침투돼 자연향에 관심이 높아졌다.
화장품이나 향수의 향을 만들어 내는데는 대개 6개월∼1년이 걸린다.
상품의 주고객층에 따라 그에 걸맞는 향의 디렉션이 결정되면 먼저 향료의 배합을 조금씩 달리한 1백50∼2백가지의 향을 제조한뒤 이중에서 최적의 향을 뽑아낸다.
20대 초반은 주로 심플하고 깨끗한 향을,25세이상은 환상적인 분위기를,35세이상은 부드럽고 평온하면서도 중후한 멋이 담긴 오리엔탈향을 선호한다. 제조된 향들은 회사직원들로 구성된 수차례의 품평회를 통해 수정과 재창조의 과정을 거쳐 최종 결정된다.
긴 작업기간동안 후각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는데 조향사들은 온 신경을 쏟는다. 감기에 걸리게되면 아예 그날 일을 포기해야 하는 탓이다. 외국에는 이들 조향사들을 위한 특별코보험까지 있다.
우리나라에도 향수문화가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음을 한실장은 전철에서 부딪치는 젊은 여성들의 태도변화에서 느낀다. 『80년대 초반만해도 내몸에 밴 온갖 향들에 질겁해 저만치 물러서는 여성들이 많았지만 요즘엔 거부감없이 대해주곤 한다』는 것이다.
한실장은 『전세계적으로 물맛을 구별할 수 있는 섬세한 감각을 지닌 민족은 우리밖에 없다』며 『정부와 기업들이 10년앞을 내다보며 보다 적극적인 투자를 한다면 우리도 곧 향료선진국에 들 수 있다』고 자신했다.<이희정기자>이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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