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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에 달렸다./김창열칼럼(토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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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에 달렸다./김창열칼럼(토요세평)

입력
1992.03.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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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개표결과를 지켜보느라,뜬눈으로 밤을 새운 다음 날,친구 몇이 모였다. 다음은 그 술자리 정담의 녹음이다.『이번 총선결과를 어떻게 보나』

『양승양패­』

『무슨 뜻인가』

『둘이 이기고,둘이 졌다­』

첫 승자는 물론 정주영씨. 역시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다음 승자는 12명의 원내고지를 확보한 젊은 혁신세력. 이들의 정치역량은 아직 미지수지만,이 그룹의 등장이 우리 사회의 새로운 흐름을 해독하는 열쇠가 아닐까 싶기도 해』

『양패는?』

『첫째는 물론 민자당. 무소속을 영입해서 과반수 의석을 확보했으니,참패가 아니라는 억지를 쓰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지만,골빈 사람들이지. 민자당의 존립근거가 3당통합인데,그 의석수가 통합전 민정당 의석수와 비슷한 수준으로까지 줄어들었다면,참패도 참패,대참패라고 해야지.

그 다음은 민주당. 『여당이 개헌선을 확보 못한 대신,이쪽 의석은 당초 목표했던 개혁저지선에 3석 미달,13대 총선 때의 야권­구 신민당+구 민주당 의석에는 한참 미달이야. 수권정당을 자처하기에는 함량부족이지. 원내에서는 정 노인의 눈치를 살펴야 할게고­. 내가 보기엔 아무래도 석패야』

『결국 기성 정치권의 총체적 패배,새로운 정치세력의 승리. 국민은 변화를 택했다­』

『맞아,「안정 속의 변화」따위 말장난은 안 통해. 국민은 새 정치판을 바라고 있어』

『물갈이논인가?』

『그렇게 말할 수 있지. 앞에 말한 젊은 혁신세력의 약진,국회 분과위원장급을 포함한 현역의원의 대거 탈락이,물갈이논이 한 흐름을 이루고 있다는 증거 아니겠나』

『어떤 신문 여론조사(동아일보 26일자)에서도,응답자의 48.1%가 제1당과 제2당의 지도층이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더군』

『그렇다면 물갈이 대세론도 가능하다는 얘기가 아닐까?』

『그러니 「양김 낚시론」의 주인이 양김진영의 핵심인물을 나란히 눕혔다는 총선결과가 매우 상징적이라구. 그가 양김을 국회에서 만나,셋이 낚시나 갑시다. 낚시터는 내가 안내할테니­할수도 있잖겠어』

『그 뒤 빈 자리는 「77세 신인」에게 맡기고?』

『하지만,다음 3가지만은 확실하지 않을까. 하나는 지금의 물갈이론은 단순한 생리적 세대교체론이 아니라는 것,그래서 다음 대선에서 그 77세가 새 얼굴을 자처하리라는 것,어느 한편에서는 득표전략상 그 3파전을 환영하리란 것…』

『그점,26일자 뉴욕타임스 사설이 예리해. 이번 총선은 낡은 정당구조를 흔들면서,오는 겨울 대선에 새 얼굴이 등장할 수 있는 문호를 열었다고 했거든』

『다음 대선의 양김구도가 불투명해졌다는 뜻이겠지』

『사실은 불투명 정도가 아니지. 요즘 민자당 꼴을 보라구. 말이야 총선 인책론이 시끄럽지만,사실은 한 김씨의 용도폐기론 아닌가. 공작차원,내분차원에서 그 주장을 관철하노라면 여당은 마냥 분란을 거듭하다가 끝내 분열. 덩달아 양김구도의 또 한편인 다른 김씨의 위상도 흔들릴수가 있겠고…. 결국은 기성 정치권,기성 정치 지도력의 뇌사상태. 양김구도가 아니라 나라의 앞날마저 불투명해 진다』

『타개책이 없을까』

『그야 한 사람에 달렸지』

『?』

『이번 총선 최대의 패자가 누군가. 이번 총선의 진짜 결과는 바로 「노소정대」야. 따져보라구. 이번 총선은 그의 치적 4년의 결산서 아닌가. 그게 시뻘건 적자투성이지,게다가 그는 이번까지 총선을 2연패했어. 그가 선호하는 의원 내각제라면,정권이 어찌 됐겠나. 그가 말했던 중간평가라면,어찌됐고­』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건가』

『말하자면,지금은 그는 벗은 대통령이야. 벗었더라도 벗은 줄만 알면 돼. 그리 알고 벗고 뛰는 거지』

『마구잡이 뛴다…?』

『무엇보다도 임기말 누수가 걱정이다,레임덕(절름발이 오리)이다­하는 시각을 없애야 해. 누수야 있겠지,나야 레임덕이지,대신 권력에 대한 미련은 없다,더 이상 좌를 보고 우를 돌아볼 것 없이 남은 임기를 마무리한다­는 자세를 분명히 하는거지. 이렇게 지도력을 재정립하고 나면,할일은 절로 보인다. 말해 볼까.

먼저 이번 총선의 물을 흐린 사례를 철저히 조사해서 대선 기강을 잡는다. 특히 안기부 흑색선전과 군부재자 투표 의혹이 그 대상이다.

다음은 당·정의 사표를 다 받아 쥐고,백지상태에서 다음 두가지를 결단한다.

하나는 총선 쟁점,특히 경제시책이다. 그중에서 가장 요긴한 것들을 골라 정책역량을 집중 투입한다. 그렇게 해서 물가든 무엇이든 한 마리 토끼는 잡는다.

둘째가 후계구도. 사실은 이것이 결단의 핵심이고,당장의 결단을 요구하는 사안이다.

그러면 어떻게 결단하나? 간단하지. 총선결과에 보인 물갈이론을 받아들인다면 그 판단에 따라 총선 민의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면 또 그 판단에 따라,누구든 적임자를 골라 지명한다. 대권후보 경선은 당연한 것이지만,자유경선을 한다고 당총재인 대통령이 나 몰라 할 수는 없을 것 아닌가. 그렇다면,대통령은 후계자를 지명하고 그에게 대통령의 모든 체중을 얹어야지. 그것도 결단은 빠를수록 좋다. 미적 미적 시간을 끌면 재앙이 온다』

『현실정치가 그처럼 간단할까』

『그래서 대통령 한 사람에게 달렸다는 것 아닌가. 그러니까 대통령이 살필 것 살피고,고민하고,결심해야지. 그 결심이 어느 쪽이든 뭔가 확실한 것이 있어야지,세상 안개지수가 이렇게 높어서야 답답해서 살수가 있나』

『하긴 그래』

『내킨 김에 한마디 더하면,정치도 정책도 그 요체는 타이밍이란 거야. 타이밍을 놓치고 나서,정치요,정책이요­해 보아야,그게 죽이 되겠나,밥이 되겠나. 그리고 노 대통령에게 마지막 남은 타이밍의 기회가 바로 지금뿐이 아니겠느냐는 거지』<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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