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대 한국학과 킹 박사 세미나 논문/33년 지식인 오창환이 제정/강제이주로 우리말 원형 보존【런던=원인성특파원】 조선어학회가 우리말 맞춤법을 제정하기 이전에 소련 극동지역의 한인사회에서 이미 우리말 표기법이 정리돼 사용됐다는 흥미있는 사실이 외국인 학자에 의해 제기됐다.
한영협회와 런던 대학교 아시아·아프리카대학 공동 주최로 지난 17일 이 대학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이 대학 한국학과 교수인 로스 킹 박사는 「소련의 한인」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지난 1933년 소련 극동지역에서 오창환이라는 사람이 우리말 표기법을 제정,이 지역 우리말 교재와 한글 신문·잡지 등에 사용됐다는 새로운 사실을 발표했다. 한국어 방언을 전공하며 여러차례 소련지역을 방문,자료를 수집해온 킹 박사는 이같은 사실이 당시 하바로프스크시에서 출간된 「고려문전」을 통해 확인됐다고 밝히고 이는 서울에서 조선어학회에 의해 우리말 맞춤법이 제정되기 3년전에 이루어진 일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고 말했다. 그는 오창환의 제자를 만나 인터뷰를 했는데 오창환은 37년에 민족주의 지식인으로 몰려 스탈린 정권에 의해 총살되었으며 주시경과 김두봉 등 당시 한글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 지역에 살다 지난 37년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 이주당한 한인들의 언어는 한국의 6개 방언에 속하지 않는 독특한 제7의 한국어 방언으로 분류될만 하며 우리말의 뿌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발표했다. 그에 의하면 이 재소한인들은 대부분 15세기에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함경도 북쪽의 육진지역으로 강제 이주된 뒤 다시 1910년을 전후해 소련 극동지역으로 이주했다. 이들은 다시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된 뒤 남한은 물론 북한과도 거의 교류가 차단된채 살아와 우리말의 원형에 가까운 독특한 방언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 이들의 방언은 15세기의 우리말과 거의 비슷한 자음체계를 보존하고 있어 우리말의 역사와 어원을 찾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있다고 밝혔다.
이날 주제발표를 한 킹 박사는 미국 예일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하버드대학에서 석사와 박사를 마쳤으며 박사논문은 「한국어 방언에 관한 소련자료」. 그는 논문작성을 위해 소련의 중앙아시아 지역을 비롯해 한인들이 주로 사는 지역을 네차례나 방문,이곳 한인들의 방언을 채록하고 한국에 관한 관계자료를 두루 수집해왔다. 그는 이달말에도 3주 예정으로 중앙아시아를 방문,방언사전 제작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할 계획이다.
한국어와 러시아어를 토박이처럼 구사하고 중국 일본 독일 프랑스 스페인 터키어 등 10여개 언어를 상당 수준으로 하는 그는 재소한인들의 생활사를 채록,방언으로 편찬할 계획도 갖고있다. 불과 몇년전까지도 한반도와는 완전히 격리된채 소련 당국의 탄압을 받으며 살아온 그들의 이야기를 엮는 것은 그들의 민중사라는 점뿐 아니라 우리말의 뿌리에 가까운 방언을 정리한다는데도 큰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고있다. 문제는 재소한인중 제7의 방언을 쓰는 사람들이 대부분 70세 이상으로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과 이러한 연구에 필요한 재정문제. 지난 네차례의 소련 방문 연구중 한번은 자비로 하고 나머지 세번은 미국쪽에서 지원을 받았다. 한국쪽에서는 아직 한번도 지원을 받은 적이 없는데 한국 학술진흥 재단에서 내년쯤 지원을 해줄지 모르겠다는 그는 연구의 상대가 되는 한인들이 고령이라는 점에서 매우 초조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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