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야당 후보의 집회였다. 사회자가 성악가이자 대학교수인 후보의 친구에게 노래 한곡을 청해 듣는 순서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교수는 나타나지 않고 대신 후보의 설명이 뒤따랐다.얘기인즉 이렇다. 평소 친한 사이인 그 교수가 이날 집회에서 「그리운 금강산」을 불러주기로 돼있었는데 갑자기 『사정이 생겼다』며 돌연 취소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사회자가 몰라 착오가 생겼다는 해명이었다.
그리고는 한마디가 덧붙여졌다. 『사정이야 뻔한 것 아닙니까. 이해해야죠』
역시 교수출신인 이 후보가 거짓말을 한것 같지는 않았다. 「외압」시비의 작은 사례였다.
물론 성악가에게 진짜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사회의 많은 사람들은 정치에 있어 「외압」의 개연성을 아직도 믿고 있다. 특히 정치인들은 이에 대한 피해의식까지 갖고 있는게 현실이다.
선거초반 이상한 일들이 많이 발생했었다. 오래전부터 출마를 준비해오던 권정달씨가 갑자기 후보등록을 포기하고 출국했다. 비슷한 시기 공천에서 탈락한 여당 의원이 평소 얘기와는 다르게 무소속 출마를 포기하고 홀연히 외국으로 떠났다. 코미디언 이주일씨의 경우는 이미 널리 알려진 대로이다.
이밖에 야당공천을 받은 몇몇 여권성향 인사들도 역시 「일신상의 사정」으로 후보등록을 하지 않았다. 어느 야당이 집회 예정장소가 갑자기 「사용불허」로 통보되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다는 얘기도 많다. 선거를 1주일 앞두고 영향력 있는 단체들이 야당을 비판하는 성명을 내 「외압」시비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엊그제는 안기부 요원 4명이 야당후보에 대한 흑색선전물을 돌리다 현장에서 적발돼 구속되기까지 했다. 그들은 검찰조사에서 상부의 지시가 없었다고 했지만 곧이 듣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이뤄지는 듯한 이상한 일들의 흔적은 여러곳에서 감지된다. 물론 그 실체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때문에 「외압」시비는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다. 선거를 유권자의 진정한 선택에 맡기는 자세를 정부·여당에 거듭 촉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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