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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전의 진상/황소웅 논설위원(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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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전의 진상/황소웅 논설위원(메아리)

입력
1992.03.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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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나타난 14대 총선의 양상을 종합해보면 종전 선거에서는 보지못한 몇가지 특이한 현상을 읽을 수 있다. 아직은 마지막 총력전이 벌어질 4∼5일이 남아있기 때문에 자신있게 속단할 수는 없지만 과거에 비해 선거분위기가 차분하게 가라앉은 듯한 인상이다. 금품선물 향응으로 어지럽게 돌아가던 혼탁 타락의 현장도 눈에 띄게 준 것 같다.유세장에서 흔히 난무하던 폭력사태는 아예 볼 수 없고 심한 야유나 행패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한 후보의 연설이 끝나면 일부 청중이 퇴장하는 김빼기 작전은 아직도 유세장에 동원청중이 많음을 말해주고 있지만 대체적으로 조용하고 차분해진 것은 틀림없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가리켜 유권자가 냉담하다고 정치적 무관심을 걱정하기도 하지만 냉담이 곧 무관심은 아니다. 지금처럼 차분한 것은 오히려 정상이다. 선거세 병에 나라전체가 온통 시뻘겋게 달아올랐던 옛날 선거분위기가 바로 과열이요 비정상적인 것이었다. 이제 우리는 점점 정상을 찾아가는 길목에 있는 것 같다. 반가운 현상이다.

그러나 막상 득표에 혈안이 되어있는 정당이나 후보들에게는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다. 표가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냉담한 유권자의 얼굴표정을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선거판에서는 정당이나 후보나 유권자 모두가 지역구마다 전혀 대세를 읽을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으로 꼽히고 있을 정도이다.

누구하나 자신을 가질 수 없는 불확실한 혼전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모두가 불안해 하는 이유는 표계산이 제대로 안되기 때문이다. 기성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가장 높을때 선거가 실시되고 바람을 탄다는 신당도 재벌당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으며 무소속도 5공 인사가 아니면 낙천자들이 대부분이다. 유권자의 구미에 맞는 정당이나 사람을 찾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사실 선택의 고민 때문에 답답해서 미칠 지경에 빠져있는 것은 후보뿐 아니라 유권자도 마찬가지이다.

찍어줄만한 사람이 없으면 기권하면 그만이지 고민할 필요가 뭐 있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지금 나타나고 있는 민주시민 의식으로 보아서는 기권도 쉬운일이 아니다.

선거사상 드물게 보는 조용한 분위기는 우리 국민의 의식수준이 그만큼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볼때 기권 역시 쉬운 선택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언론의 계몽 고발기사나 정부당국의 단속도 이런 분위기를 가져오는데 적지않은 역할을 했지만 긍극적으로는 민주시민의 양식이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우리네 선거풍토도 바뀌어지는 날이 오고말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한다.

이제부터 달라져야할 쪽은 정당이나 후보들인 것 같다.

권력의 압력으로 정치를 좌지우지 해보겠다는 공작정치의 근성,망국적인 지역감정을 이용하든 불법부정 수단을 동원하든 정권욕만 채우려 드는 정당의 지도자들,진짜 이슈는 덮어버리고 쓸데없는 공약만 남발하는 무책임한 후보들,돈이면 무엇이든 안되는게 없다고 생각하는 졸부정치인들,일시적인 거짓말로 국민을 속여 당선만 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구태의연한 정객들­ 이런 작태들을 눈앞에 보고있는 유권자들은 선택의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지금 각 정당이나 후보들이 보여주고 있는 정치의식 수준은 일반 시민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이번 선거판에서 깨달아야할 것이다. 앞으로 정치인들이 향상된 국민의식 수준으로 따라 올라가지 못할 경우 「선거 따로 국민 따로」라는 괴리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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