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소된 회회복원 「그림전문의」/국내 유일… 불서 3년간 도제수업/고가품 실수땐 “가산탕진” 초래도/고도의 집중력·화공학 전문지식등 필수서울 종로구 관훈동 37 미술품보존연구소 소장 최명윤씨(45)는 병들고 늙은 미술품을 치료하는 우리나라 유일의 그림전문의다. 구겨져 잔주름이 생긴 그림이나 꺼멓게 검버섯이 핀 그림,곰팡이가 슬거나 취급부주의로 일부가 훼손된 그림 등이 모두 최씨의 치료대상이다. 회화수복(수리복원)의 본고장인 프랑스에서 3년간 도제식수업을 받고온 경력이 말해주듯 상처입고 병든 그림에 최씨의 섬세하고 치밀한 손길이 스쳐지나가면 젊고 싱싱한 원래모습으로 탈바꿈한다.
최씨는 『미술품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숨을 쉬고 있으며 적절한 영양공급이 필수적』이라며 『사람 피부와 같이 주어진 환경에서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미술품의 수명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미술품의 훼손원인은 물감등 재료자체가 화학물질이기 때문에 주변의 온도·습도·진동등 환경조건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마련이다.
사계절이 분명해 온도변화가 심하고 장마철이 있는 우리나라 환경에서 가장 전형적인 훼손형태는 캔버스뒤천이 습도 변화에 따라 늘고 줄면서 생기는 그림의 균열현상이다.
이같은 경우는 변형된 캔버스뒷면에 한지를 붙여 팽팽하게 만든뒤 습도 90∼95%,섭씨 30도에 맞춘 습도실에 보관시켜 자연상태에서 천의 탄력을 키워준다.
천이 원상태로 돌아오면 그림의 균열부분에 특수사진촬영으로만 식별할 수 있는 현광물질과 물감을 섞은 석고를 바르면 감쪽같이 새그림이 된다.
석고는 언제라도 쉽게 제거할 수 있고 형광물질을 넣었기 때문에 어느 부분을 수리했는지 식별이 가능하다.
최씨는 『미술품 자체가 고가품인데다 수리에는 완벽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후세의 평가에 따라 다시 개선이 가능하도록 처리하는 것이 회화복원의 기본』이라며 『감쪽같이 고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알아볼 수 있게 고치는 것』이라고 말한다.
물감이 떨어져 나가거나 일부 훼손된 작품수복에는 아교투입법,밀랍침투법등 다양하고 복잡한 절차를 밟게되지만 철저한 사전진단과 아울러 작가의 물감사용법과 취향에 이르기까지 완벽한 자료를 수집·분석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최씨가 지금까지 유명작가들이 사용했던 캔버스천을 모아둔것만 2천여장에 이르는 것도 이같은 평소의 「공부」결과이다.
그림 재료부터가 화학물질이기 때문에 화공학에 대한 전문지식 또한 회화복원가에게 빼놓을 수 없는 자격요건이다.
최씨는 진품증명이 없는한 손을 대지 않는다. 이때문에 작업실에 작업대기중인 6개의 작품가격만도 10억원을 호가,작업중 단한번의 실수는 바로 「가산을 거덜내는」 결과를 초래한다.
지난 86년말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처음 이 일을 시작할때 최씨는 프랑스에서 가져온 재료를 사용하다 작품을 망가뜨려 3년동안 적금을 부어가며 작품값을 고스란히 물어준 아픈 경험이 있다.
오랜 도제식수업에다 끝없는 철저함을 요구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이기는 하지만 외국에서는 최고의 작가와 같은 대우를 받는다.
홍익대 미대출신의 최씨는 우리나라 최초로 화방을 연 최영소(84년 작고)의 장남으로 어려서부터 훼손된 미술품을 만지면서 일찌감치 회화복원에 관심을 가졌다.
지난 83년 프랑스로 건너가 세계적인 수복전문가인 랄페르씨 밑에서 배운 최씨가 지금까지 복원해준 그림은 30여점.
고도의 정신집중이 요구되고 6년동안 손도 대지 못한 작품이 있을 정도로 어려움이 많지만 간혹 미술사에서 조차 사라진 작가들의 작품을 찾아내 복원시킬때는 이 직업만이 갖는 큰 보람을 느낀다.
지난해 9월 월북작가 이쾌대의 유족이 집창고에 묵혀두었던 작품 50여점을 가져왔을때는 10여명의 직원들과 한달동안 밤샘작업을 한끝에 전시회를 갖고 세상에 알릴 수 있었다.
최씨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미술품 보존에 대한 여전히 낮은 인식이다. 잘 보존돼 깨끗한 그림은 오히려 위작이라고 의심하는 풍토때문에 캔버스에 낀 먼지조차 털어내려 하지 않는 것이 작품노화를 촉진시키는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다.
최씨는 『적절한 관리와 보존이 없는한 예술은 인생보다 훨씬 짧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송용회기자>송용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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