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 25세 연상 이박사와 결혼/숱한 영욕… 70년 망명서 귀국19일 새벽 타계한 프란체스카여사는 건국이후 초기 격동기의 현대사를 지켜본 유일한 이방인이었다.
프란체스카여사는 지난 65년 하와이에서 남편인 고 이승만 전 대통령과 사별한뒤 「망명 10년」을 청산하고 70년 귀국,이화장에 머물며 평범한 한국 여인으로서의 여생을 보냈다.
프란체스카여사는 귀국한뒤 왕성한 사회활동을 펴오기도 했다.
프란체스카여사는 영욕의 세월과 27년간의 미망인 생활을 마감하고 이날 새벽 타계,남편의 뒤를 따랐다.
지난 34년 세계적인 사업가를 꿈꾸던 프란체스카여사는 33세의 나이에 자신보다 무려 25세나 연상인 한국의 독립운동가 이승만과 결혼,남편의 독립운동 뒷바라지 끝에 12년간 고달픈 미국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해방된 조국에 돌아왔다.
이후 48년 이박사가 초대대통령에 선출되자 경무대로 거처를 옮긴 프란체스카여사는 4·19로 이박사가 하야한 61년까지 대통령 영부인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경무대로 옮기뒤 채2년이 안돼 프란체스카여사가 겪은 가장 큰 시련은 6·25전쟁.
수도 서울을 떠나 피난행렬에 들어섰을때 『내 평생 처음 판단을 잘못해 이런 엄청난 비극을 가져왔다』고 괴로워하는 이박사의 모습이 이방인 영부인에게는 큰 아픔이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프란체스카여사를 가장 괴롭혀 왔던 것은 남편이 올바른 방향으로 정치를 할수 있도록 고언을 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남편 이박사가 망명지인 하와이에서 향수병에 시달리다 65년 타계할때까지 이박사곁을 지켜왔던 프란체스카여사는 잠시 모국 오스트리아로 돌아갔다.
70년 박정희 대통령의 권유와 손자들의 재롱이 못내 그리워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프란체스카여사는 양자 이수위씨(61)가족과 함께 이화장에서 여생을 보내왔었다.
노후까지 비교적 건강한 모습을 유지해왔던 프란체스카여사는 지난 2월 방에서 넘어진 후부터 건강이 악화,약 50일동안 병석에 누워있다 19일 새벽 별세했다.
영욕의 세월과 함께 격동의 현대사를 지켜봤던 프란체스카 여사는 이제 제2의 모국 한국땅에서 영원히 잠들게됐다.<강진순기자>강진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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