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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표로소이다/김창렬칼럼(토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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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표로소이다/김창렬칼럼(토요세평)

입력
1992.03.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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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선거 꼴이 시덥잖다고 해도 투표는 해야 한다. 투표를 하되,4선지선다형 시험지를 앞에 놓은 못난이 대입생처럼,붓대를 굴려 표를 찍을 수는 없다. 그것이 국민된 도리요,깨어있는 주권자의 자세다. 마땅한 판단기준을 세우고,그에 따라 선택을 해야한다. 입후보자들이 내세운 공약,그가 소속한 정당의 정책쯤은 알고 판단해야 한다­.명색이 사회공기에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대강은 이렇게 쓸 수 밖에 없다. 그러자면 여·야 각 당의 총선공약은 어떤 것인지,여당의 공약은 무엇이며,야당의 공약은 그것과 어떻게 다른지 쯤은 알아야 하지 않는가.

그래서 여·야당이 내놓은 총선공약 팸플릿을 얻어다 읽는다.

그러나 곧 후회한다.

그것은 정책 모음이기 보다는 차라리 표어의 나열이다. 읽을수록,읽을 맛이 덜해진다. 페이지마다 가득한 표어를 읽자니,모래알 씹는 것 같다.

다만 한가지 기특하기는,그 소책자에 없는 것이 없는 것이다. 그안에는 월급쟁이 남편을 위한 표어,맞벌이 아내를 위한 표어,대학다니는 아들놈을 위한 표어,정년뒤가 무료한 할아버지를 위한 표어가 함께 들어있다. 돈있는 사람,돈없는 사람을 위한 표어가 나란히 줄을 선다. 세금을 줄이고,일은 크게 벌이겠다고 한다. 상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생색이란 생색이 그 속에 다 들어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말하자면 「표어백화점」이다.

하지만 이 백화점의 흠은 없는 것이 없다는 바로 그 점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꼭 이것이다 싶은 표어를 찍어낼 수가 없다. 표어가 하도 많다보니,그 앞뒤가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알수가 없다. 중점이 어디있는지,우선순위가 어떻게 되는지도 알수가 없다. 이 많은 표어를 다 실현하겠다는 것인지,언제까지면 실현이 가능하다는 것인지가 의아스러워진다. 팸플릿독자의 처지로는 더욱,이들 표어를 다 실현하는데 돈이 얼마나 들는지,그 뒤를 대자면 세금을 얼마나 더 내야 할는지를 알수가 없어서 딱하다.

이런 「표어백화점」이 총선을 앞둔 한 동안,정당마다 열을 올렸던 「공약개발」의 성과라면,각 당의 「공약개발」 전문가들은 헛수고를 한 셈이 된다. 그들은 표어를 망라해서 「표밭저인망」을 뜬다고 생각했을지 모르나,그런 그물에 걸릴 표가 몇이나 된다고 생각했을까. 「정책개발」을 제쳐둔 급조 「공약개발」의 한계가 이런데 있다고 해야할 것이다.

안됐지만,총선 공약의 독후감은 각 당이 모두 비슷하다. 표어는 많은데,어떤 것은 너무 잘고,어떤 것은 너무 막연하다. 그 행간에서 뚜렷한 국정구상은 떠 오르지 않는다. 약간 짙은 실망감속에,문득 평론가 월터 리프먼의 말이 떠오른다.

『정치꾼은 말한다. 당신네가 바라는 것을 내가 주겠소­. 그러나 정치가는 말한다. 당신네가 바란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요­』

그의 말대로,눈 앞의 이익으로 국민을 꾀는 것은 정치꾼이나 할 일이다. 진정한 정치가라면,국민들의 막연한 바람을 결정시킬 수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정치 지도자가 할 일이다. 그럴 때 국민들은 마음 놓고 지도자를 따른다.

리프먼의 말투를 빌리자면,총선공약이라는 「표어백화점」은 결코 정치가의 작품일 수가 없다. 그런 투의 「표밭저인망」이나 생각해내는 정당을 정치가의 집단이라 보기는 더욱 어렵다. 지금의 총선과정도,그것이 정치가가 아닌 정치꾼끼리의 다툼이기에 이 모양 이 꼴이라고 한다면,체념할 수밖에 없다. 그저 차선이나 찾아볼 뿐이다.

또 하나 총선 공약을 읽어보고 남은 느낌은 정치의 어법은 참 묘하다는 것이다. 쉬운 예문 하나를 들자면,금융실명제에 관한 민자당의 공약이다. 그 공약은 이렇게 말한다.

『…금융실명제의 단계적 실시에 필요한 여건을 조성한다』

금융실명제는 지난 대선때 노 대통령이 공약했으나,90년 4월에 백지화됐다. 그런것을 4년만에 재공약하면서,새삼 「단계적 실시」 「여건 조성」의 두겹 쿠션을 놓고 있다. 시정의 어법으로 번역하면 실명제를 않겠다는 것밖에 안된다.

이 문제에 관한 야당의 공약은 이보다 분명하다. 민주당의 공약은 실명제의 「조기 실시」 「전면 실시」 「완전한 실시」를 거듭 밝히고 있다. 국민당은 더 간명하게 「금융실명제를 즉각 실시한다」고 다짐한다. 이만하면 시정어로의 번역은 필요없을 것 같다.

그러나 하나의 예로 든 금융실명제가 사실은 어법 이상의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음을 간과할 수는 없다. 문제는 3당이 내건 실명제 공약이 어떠하든,또 그 공약의 속뜻이 어떠하든 간에,가명구좌가 아니었다면,지금 3당이 쓰고 있는 엄청난 선거자금도 나올데가 없었으리라는데 있다. 가명구좌 돈으로 찍었을 팸플릿에 실명제공약이 실려있으니,아무래도 겉다르고 속다르게 보일 수 밖에 없더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분야 공약은 또 어떻게 읽고 해석해야 하는가. 이런 의문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정치어와 시정어의 차이 이상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니고 무엇인가.

각 당의 총선 공약을 읽어보니,이번 총선에 부동표가 많다는 까닭을 알것도 같다. 나 자신은 부동표이기가 싫어서,유세장에도 가보고 총선공약도 읽어 보았으나,아직은 「나도 부동표로소이다」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다.<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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