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종교갈등·역사적 원한얽힌 “실타래”(화제추적)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종교갈등·역사적 원한얽힌 “실타래”(화제추적)

입력
1992.03.14 00:00
0 0

◎가닥 못잡는 CIS 민족분규/나고르노 변혁기마다 전화/군개입 국면땐 국제전 확산 가능성도지난달말,모스크바의 독립국가연합(CIS) 군사령부로 긴급전문이 날아왔다.

「더이상 참을 수 없다. 공격허가를 바란다」

짧지만 격렬한 어휘로 구성된 이 긴급전문의 발신지는 CIS내 최대 민족분규 지역인 나고르노 카라바흐 자치주에 주둔중인 구소련군 이었다. 현지주둔군은 민족주의 무장세력의 집중공격을 받자 모스크바에 대응작전을 촉구한 것이다. CIS군 사령부는 즉각 『어떤 세력의 공격도 좌시하지 말고 분쇄하라』는 명령을 하달했다.

군부가 정치분쟁·민족분규에 침묵을 지켜오던 「금기」를 사실상 깨고 정치개입의 길을 열어논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 명령은 「공격을 받을 경우」라는 전제를 달고있어 다분히 방어적 차원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군부가 당장 정치분쟁에 뛰어들 가능성은 거의 없다. 실제로 모스크바는 나고르노 카라바흐에서 주둔군을 철수시켜 우발적인 분쟁개입 소지마저 없애려 하고있다. 하지만 곳곳에서 민족분규가 악화되고 이 와중에서 군기지가 치명적인 공격을 받는다면 군부의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할 여지는 남아있다.

민족분규가 군부개입 우려까지 불러일으킬 정도로 악화되고 있는데는 인종·종교·역사적 적대관계가 복합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CIS는 전체적으로 인종만해도 총1백20여종이나 되고 자치공화국 20개,자치주 23개,자치지역 48개로 복잡하게 구성돼 있다. 복잡한 모자이크 민족국가인만큼 중앙통제력이 약화된 현상황에서는 민족분규가 봇물터지듯 발생하는 것은 당연지사.

대표적 분쟁지는 카프카스산맥 주변의 나고르노 카라바흐. 이 지역은 아제르바이잔내에 위치한 자치주이지만,인접 아르메니아가 「자치주민 85%가 아르메니아인」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이미 양측간 충돌로 수많은 사람들이 숨졌으며 자치주내 호잘리 마을에서는 아제르바이잔인 시체 2백구가 발견될 정도로 상황은 악화돼 있다. 또 무탈리보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은 지난 6일 미온적 대처에 항의하는 민족주의자들에 밀려 사임했다.

단기적 시점에서 보면 나고르노 카라바흐 분쟁은 다분히 영토권 갈등으로 보인다. 그러나 역사적 배경을 보면,두민족간의 적개심은 상상외로 깊다.

아르메니아는 인근 국가중 유일하게 기독교를 신봉해와 주변 회교국가들의 박해를 심하게 받아왔다.

그 반발로 아르메니아인들의 민족감정은 남달리 강하다. 14세기 이후 수백년간 이 지역을 지배해온 오스만 터키제국은 아르메니아 민족을 말살하려고 모진 탄압을 자행했다. 특히 터키는 1차대전중인 1915∼1916년 러시아를 지원한다는 이유로 무려 1백50만명의 아르메니아인을 학살한바 있다.

1차대전 직후인 1918년 나고르노 카라바흐 지역은 민족주의 바람에 휩싸였고 이 와중에서 아제르바이잔은 같은 회교국인 터키의 지원을 받아 아르메니아인들을 무차별 학살했다.

이처럼 오랜 적대관계의 두 민족이기에 화해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독재자 스탈린이 1923년 비상사태를 선포,나고르노 카라바흐를 아제르바이잔에 귀속시켰을때 아르메니아인들의 원한은 잠복했지만 더욱 깊어졌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의 민족문제 보좌관 갈리나 스타로보예토바는 『나고르노 분쟁은 유고 내전보다 훨씬 위험스럽다』고 경고한바 있다. 이 보좌관은 『충돌이 격화될 경우 이 지역은 러시아·우크라이나 등 국제적 개입을 불러일으켜 1차대전 촉발지인 사라예보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외에도 분쟁예상지는 곳곳에 산재해 있다. 나고르노 카라바흐가 아제르바이잔내의 문제지역이라면 아르메니아 안에는 나히체반 자치공화국이 위험지역. 공화국 주민 27만명 대다수가 아제르바이잔이고,1924년 이래 사법관할권을 아제르바이잔이 갖는 등 실제로는 아제르바이잔의 자치공이기 때문에 전면전 발발시 이곳 주민들이 아르메니아의 배후를 칠 가능성이 있다.

카프카스 지역의 또 다른 민족분규 예상지역은 그루지야내의 아부하지아 자치공화국과 남오세티아 자치공. 그루지야 인구의 7%인 아부하지아인들은 언어·문자·문화 등에서 그루지야인들과 다른생활을 해왔다. 아부하지아인들은 지난 89년 독립을 요구한바 있는데 최근 다시 들썩거리고 있다.

남오세티아 자치공도 주민들이 그루지야인들과 다른 러시아계로,러시아에 소속된 북오세티아와의 통합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루마니아에 인접한 몰도바의 경우는 「분열속의 분열」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몰도바측은 전인구의 64%가 루마니아인이고 과거 루마니아 영토였으며 루마니아어를 공용어로 쓰기 때문에 루마니아와의 합병을 내심 원하고 있다.

그러나 몰도바내의 러시아인들이 이에 반발하고 있다. 몰도바내 러시아 민족주축의 드네스트리 자치공측은 『몰도바가 루마니아로 간다면,우리는 러시아로 가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또한 터키계 소수민족의 가가우즈 자치공은 지난해 9월 「몰도바로부터의 탈퇴」를 결의한 상태다.

CIS 종주국 러시아 역시 16개 자치공,3개 민족구,4개 자치주로 구성돼 있어 소수 민족문제로 골머리를 앓고있다. 대표적인 곳은 지난해 11월 독립을 결의한 회교도 밀집지역인 체체노 잉구슈 자치공. 옐친 대통령은 비상포고령으로 강경대응 하려 했으나 러시아 최고회의가 이에 제동을 걸어 사실상 이들의 독립을 묵인해왔다. 최근에는 체첸족과 잉구슈족간의 분쟁도 발생,또 다른 분열이 예상되고 있다.

현재까지는 CIS 전체를 붕괴시킬만한 대규모 민족분규는 터져나오고 있진 않지만,경제난 악화와 맞물려 민족간 무력충돌이 악화될 경우 민족문제가 독립국가 연합의 뇌관이 될 우려가 크다.<이영성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