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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울분과 민주의식/김동익 새문안교회 목사(종교인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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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울분과 민주의식/김동익 새문안교회 목사(종교인칼럼)

입력
1992.03.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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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양태를 세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번째 부류는 목표 지향적인 삶이다. 자기가 설정한 목표를 위하여 전력투구하는 삶이며,때로는 목표 성취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이웃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또는 역사에 어떤 흔적을 남길 것인가에 대해서는 별로 고려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의 목표 달성에만 집착한다.어떻게 보면 집념의 사람처럼 보일지 모르나,그들에게 있어서 결정은 목적 성취를 위해서는 정상적인 과정을 무시할 때가 많고 때로는 폭력도 인권유린도 불사한다. 그 전형적인 형태를 마르크스주의자나 나치들,그리고 수다한 혁명가들,독재자들에게서 볼 수 있다.

두번째 부류는 법 또는 어떤 규범에 따라 움직이는 삶이다. 퍽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떤 법이나 제도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은 과거에 얽매이기 쉽고 기득권 유지에 급급하고 형식적인 정당성만 찾기 쉽다. 이런 사람들은 현재 자기 곁에 일어나고 있는 역사적인 사건들에 대해서 관심을 별로 가지지 않는다. 더욱이 새롭게 전개되는 내일의 세계에 대하여 폐쇄적이다. 다만 현실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짙다.

세번째 부류는 우리가 함께 해야할 책임이 무엇인가에 따라 행동하는 삶이다. 즉 『내가 성취할 목적이 무엇이냐』 또는 『내가 지켜야할 법이 무엇이냐』라는 물음보다는 『우리가 함께 해야할 책임이 무엇이냐』라는 물음에 자신을 부응시켜가는 삶을 말한다. 이러한 사람에게 민주시민 의식이 있다.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 보거나 현실을 직시해 볼때 첫번째와 두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많이 보아왔고 또 그러한 사람들이 소위 출세하였다. 세번째 부류의 사람은 언제나 외면당해 왔었다.

이러한 현상을 지금 전개되고 있는 총선과정에서 더욱 역력히 보고 있다. 후보들은 한결같이 『우리가 함께 해야할 책임이 무엇이냐』에 대해 대답하기 보다는 오직 당선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거나 기득권 유지에 급급한 형편이다.

지금 우리가 함께 해야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민주화이다. 광복후 우리역사는 분단의 시련과 독재와의 고투를 겪어왔었다. 이런한 과정에서 민주주의 싹이 자랄듯 하면 꺾여 왔었다. 6공화국을 지나오면서 민주화의 눈을 뜨게 되었다. 지금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이땅에 정착시켜야 할 때이다. 이러한 때 14대 총선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우리를 서글프게 하는 것은 전국 각지에서 금권에 의한 타락선거운동이 자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14대선거는 「돈 선거」라는 말이 돌 정도이다. 심지어 「50당 30락」이라는 말이 나돈다. 50억을 쓰면 당선되고 30억을 쓰면 낙선한다는 말이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산정한 허용된 선거비가 1억수천만원인데 비하면 엄청난 액수이다. 더욱이 전국구는 본래의 취지와 달리 정치인들의 자리안배나 「전국구」가 되었으니 실망이 클 수 밖에 없다.

한 후보가 국회의원이 되기위해 30억을 썼다고 가상해 보자. 실로 엄청난 금액이다. 30억에 대한 은행금리를 계산해도 월 3천만원이나 된다. 국회의원 월 세비의 10배나 된다. 선거경비가 4년 임기동안에 받는 세비의 총액보다 10배나 된다. 그러면서도 국회의원이 되려고 안절부절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임기동안에 보충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면 부정이외에 더 있겠는가? 그러면 애국심에서 우러나오는 희생인가? 아무리 눈을 뜨고 보아도 그런 사람은 보이질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명예욕이거나 권세욕일 것이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그야말로 국민의 선량이 아니라 국민을 농락하는 일이다. 이런 사람들은 차라리 국회로가 아니라 쓰레기통에 밀어 넣었으면 한다.

근대 민주주의의 발전을 바라보면 그 밑바탕에는 시민들의 도덕적인 울분이 깔려있었다. 절대군주하에 있던 프랑스 국민들의 자유 평등 박애라는 도덕적 울분이 저 유명한 1789년 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근대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룬 영국의 청교도 혁명,미국의 독립운동 등 모두가 시민들의 도덕적 울분의 발로였다.

우리 사회를 어둡게하는 것은 이러한 도덕적 울분이 식어 있다는 점이다. 후보자들 뿐만 아니라 유권자들 역시 타락선거에 길들여져 있다. 입후보자로부터 돈 봉투나 선물 하나 받지 않으면 오히려 섭섭해 할 정도이다.

민주사회의 생명력은 도덕적 울분을 가진 시민의식에 달려있다. 얄팍한 이해관계에 얽매여 유권자의 양심이 마비된다면 민주화의 길은 아득해질 것이다. 우리는 밥한그릇 안 얻어 먹어도,돈 몇만원 안받아도,수건 한장 안받아도 살만한 형편이다. 이젠 모든 국민은 민주주의의 눈을 뜨고 선거를 바라보면서 공명선거가 되도록 일익을 담당할 수 있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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