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티가 진두지휘 전 보스 총탄세례”/“막대한 돈 독식에 격분 동료들과 살해모의/제거후 파벌두목회의 거쳐 고티 대부추대”그라바노가 증언한 카스텔라노 살해경위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당시 감비노가를 이끌던 카스텔라노가 건설업에서 벌어들인 막대한 이익을 독차지하자 「식구」들이 불만이 커졌다. 평소 마약거래 문제로 목숨의 위협까지 느껴야했던 고티는 더욱 격분,그라바노등 몇명과 함께 카스텔라노 제거계획을 짰다.
D데이는 85년 12월16일. 카스텔라노는 이날밤 맨해턴 46번가 스타크스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사촌이자 파벌 두목인 토머스 감비노와 만나기로 돼 있었다.
D데이 전날밤 고티일당은 브루클린의 건설회사 지하실에 모여 「결행」을 확인하고 저격조를 편성했다.
당일 이들은 총과 워키토키로 무장하고 식당에서 1마일쯤 떨어진 공원에 집결했다. 고티와 그라바노는 링컨 콘티넨탈에 동승해 식당으로 접근해갔다.
운전은 고티가 맡았고 그라바노는 저격조가 실패할 경우에 대비,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카스텔라노의 콘티넨탈이 신호등에 걸려 고티일행의 차와 나란히 멈춰섰다. 고티가 워기토키를 통해 『그들이 식당으로 접근한다』고 연락했다. 하얀색 코트를 걸치고 검은색 러시아 중절모를 눌러쓴 4명의 저격수가 카스텔라노의 차를 향해 일시에 달려들었다. 당황한 카스텔라노가 문을 여는 순간 4자루의 총이 동시에 불을 뿜었다. 그리고 운전석 문을 열어 제치는 빌로티에게도 총알이 퍼부어졌다.
고티가 현장으로 서서히 차를 몰았고 그라바노는 그들의 죽음을 확인한 후 브루클린 사무실로 돌아갔다.
카스텔라노와 만나기로 돼있던 그의 친구 프랭키 디치코는 뒤늦게 식당에 나타난 토머스 감비노에게 『네 사촌이 죽었다. 빨리 피하라』고 말했다.
카스텔라노 제거 며칠후 고티일당은 맨해턴의 시저 식당에서 각 파벌의 두목회의를 소집했다. 그라바노와 고티의 친구인 안젤루 루지에르는 파벌두목 아니었지만 무장한채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참석자들에 대한 일종의 위협이었다.
감비노가의 고문인 조셉 갈로가 회의를 주재하며 『우리는 누가 카스텔라노를 죽였는지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피아 조직에서는 두목을 살해하는데 엄격한 규범이 적용된다. 이를 위반하면 바로 목을 내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 규범을 어겼음에도 불구하고 무사했다. 세력재편이 이뤄지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며칠 후 고티,갈로,그라바노 등 주모자들은 맨해턴의 커피숍에 모여 두목 선출건을 논의했다.
이후 맨해턴 다운타운의 어느 지하실에서 파벌두목회의가 열렸다. 그라바노도 참석했다. 프랭키 디치코가 일어나 『존 고티를 보스로 뽑자』고 제의했다. 모두 테이블에 둘러서 이에 동조했다. 고티가 새로운 대부로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고티는 마피아계의 규율에 따라 특사를 뉴욕의 4개 마피아단에 보내 새 보스선출을 알리고 승인을 요청했다. 모두 새 보스인 고티에 축하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러나 「제노베세」가만은 『규범이 파괴됐으니 언젠가 이에 대한 해명이 있어야 한다』는 경고를 단서로 붙이고 고티의 추대를 인정했다.
고티는 대부가 되자 최우선적으로 심복이 된 그라바노를 두목(captain)급으로 격상시켰다. 그라바노는 87년 제3인 자격인 고문으로 90년에 제2인자로 추대됐다. 고티는 부하들에게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라바노가 대행을 맡는다』고 후계 지명까지 했다.
그라바노는 이날 증언을 마치며 『고티와 함께 맨해턴의 연방 형무소에 수감중이었던 91년 11월 FBI와 비밀리에 접촉했다』며 『종신형이 두려워 검찰에 협력키로 결심했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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