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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정신으로 조상의 얼 재현(이런직업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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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정신으로 조상의 얼 재현(이런직업 아시나요)

입력
1992.03.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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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동품수리전문가 이영하씨/연대·재질분석 정확한 복원 심혈/솜씨 신기방불 위조업자 유혹도/20여년 외길인생 일감줄어 전업고려이영하씨(53)의 삶은 수백년 시공의 간격을 왕래한다. 서울 종로구 관훈동 24에서 「풍년공예」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씨는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골동품수리전문가이다.

가게의 좁은 작업장에 웅크리고 앉아 고가구,고도자기를 만지는 그의 모습은 그대로 조선시대 장인을 닮아있다. 자세나 몸짓 뿐 아니라 눈빛까지도 혼을 불어넣어 자신의 분신을 만들어 내던 옛사람을 연상케한다. 이씨의 일은 망가지고 훼손된 골동품을 감쪽같이 원형으로 복원시키는 것. 온정신을 쏟아 옛날 물건을 만들 당시,장인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완전한 수리를 할 수 있다.

이씨는 서울 인사동,황학동 등지의 골동품상들로부터 의뢰나 소개를 받아 일감을 맡는다. 요즘 일거리는 반닫이,소반,찬장,문갑,옷장 등 목제고가구가 대부분이다.

수리작업은 물건의 감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제작연대와 지역,재료,칠 등을 정확히 짚어내야 정확한 재현이 가능한 것 임은 물론이다.

반닫이만 하더라도 장식쇠의 재질이 시대별로 무통·황동·백동 등으로 차이가 나고 소반도 통영반·나주반·충주반 등 생산지역에 따라 재질이 다르고 모양도 다각·서방·반월·연엽·원형 등으로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감정이 끝나고 복원방법등이 정해지면 칠하기·장식달기·틈새메우기 등의 구체적 작업에 들어간다.

장식을 새로 달아야할 경우에는 문양을 원형대로 그려 아현동이나 서강대 후문근처 장식제작전문업체에 제작을 의뢰한다. 이곳에서도 옛맛을 살리기위해 주문한 연대에 따라 오려낸 철제문양을 일정기간 산으로 부식시킨다. 이렇게 하면 장식 곳곳에 구멍이나 흠집이 생겨 옛맛이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칠작업은 우선 부분칠을 할지,전체칠을 할지를 결정한다. 부분칠로 도저히 완벽한 재현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때는 할 수 없이 전체를 모두 칠해야하는데 칠감은 조선시대에도 사용했던 인도산 「세락」이라는 것을 수입해 쓴다.

이중 부분칠은 주위의 색깔과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칠할 부분을 사포로 가볍게 벗겨낸뒤 엷게 칠하면서 주위와 어우러지게 덧칠을 한다.

갈라진 틈은 못쓰게 된 옛가구들에서 같은 재질의 목재를 구해 크기에 맞게 자른뒤 아교로 붙여 칠을 마치면 감쪽같이 옛모습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해서 전작업을 마치는데 평균 3일 정도가 걸린다.

아주 오래됐을 듯 싶은 골동품 수리가 어엿한 직업이 된 것은 뜻밖에도 20년이 채 안된다. 그전까지는 골동품이라면 눈에 띄지않는 뒤켠에 쌓아두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70년대 들어 골동품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부동산투기와 함께 골동품에도 투기바람이 불면서 집 다락이나 땅 깊숙히 치워져있던 옛 물건들이 갑자기 안방과 거실 한복판으로 불려나와 대접을 받기 시작했다. 수선품인 이른바 「파치」도 신품의 30∼40% 가격에 거래돼 자연스럽게 수리전문업자들이 생겨났다.

인사동일대 골동품업소에서 일하던 이씨도 이때부터 수리기술을 익혔다. 20년이 넘은 이씨의 수리솜씨는 전문가들조차 자외선감식기등 특수기계를 동원하지 않고는 식별이 어려울만큼 감쪽같다.

이때문에 이씨는 위조품 제작업자들로부터 수없이 유혹을 받았으나 『조상의 정신을 그런식으로 더럽힐 수 없다』며 물리쳐 왔다고 한다.

이씨는 원래 도자기 수리부터 시작했다.

도자기류는 목가구보다 훨씬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깨진 곳을 복원하거나 수십개의 조각들로 파손된 것을 이어붙인 뒤 색을 입혀야하는데 색내기가 쉽지 않다.

깨진 곳은 석고를 이용해 만들어 붙인뒤 문양을 그리고 특수 페인트로 칠을 하는데 고온처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유약을 사용치 못한다. 조선시대 도자기들은 시기별로 이용한 색과 질감의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재질도 지역별로 차이가 있어 어려움이 많다.

요즘은 조선자기들이 드물 뿐만 아니라 수리를 의뢰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이씨는 오랜 수리경험으로 고가구나 도자기에 관한한 뛰어난 감정가가 됐다. 고객들로부터 진품여부를 가려달라는 부탁을 자주 받고 있는데 스스로 복원하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에 여지없이 진위를 구별해낸다.

점차 일감이 줄어 전업을 생각하고 있다는 이씨는 『70년대 초반 당시에 값싼 골동품 몇개만 구해두었더라면 지금은 남부럽지 않은 부자가 되었을 것』이라며 웃었다.<정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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