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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발전의 4단계/양건 한양대교수·법학(시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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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발전의 4단계/양건 한양대교수·법학(시사칼럼)

입력
1992.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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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5일은 우리의 현대사에서 수치스런 날이다. 「올빼미표」니 「피아노표」니 하는 지금 젊은 학생들이 들으면 무슨 뜻인지도 모를 온갖 부정이 저질러졌던 「3·15 부정선거」. 그때로부터 32년이 지난 지금 제14대 총선을 앞두고 온나라가 「돈선거」의 몸살을 앓고있다.지난 광역의회 선거에서 엄청난 타락상이 드러났을때 일부에서는 다분히 자위적인 낙관적 전망도 없지않았다. 광역선거는 「졸부들의 행진」이었던 만큼 특수현상으로 볼 수 있다는 견해였다. 그러나 그렇치 않음이 이미 드러나고 있다. 「돈잔치」의 우려는 기우가 아닌 현실로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금품·향응의 제공과 같은 매수행위의 작태가 비단 「저질」후보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내로라 하는 화려한 학력과 경력을 지닌 후보들도 예외가 아니다. 참으로 개탄할 일이다.

선거법에 규정된 수 많은 종류의 선거범죄들은 그 성격에 따라 크게 두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첫째는,이를테면 「파렴치 선거범죄」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다. 예를들면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하는 매수행위나 폭력행위,또는 속임수를 쓰는 따위의 선거범죄가 여기에 속한다. 이런 선거범죄들은 반드시 선거와 관련시켜 보지않더라도 이미 그 행위 자체가 범죄에 해당하는 것이고 그만큼 더 악질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비해 예컨대 소형인쇄물의 규격을 어긴다거나 법에서 인정한 수량을 넘어 배포한다든가 하는 과잉홍보 행위는 앞의 것들과 성질상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행위도 선거법 위반임에는 틀림없지만,그 행위 자체가 형사범적 성격을 갖는다고는 보기어렵다. 또 어느면에서는 후보자가 자신을 더 잘나게 더 많이 알리고 싶은 것은 자연스런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다만 선거가 하나의 경쟁인 이상,정해진 경쟁의 규칙을 어겼다는 점에서 책임을 묻는 것이다. 이런 선거범죄를 편의상 「단순 선거범죄」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파렴치 선거범죄와 단순 선거범죄의 구별은 법에서 명시된 것은 아니지만 그 성질상 차이는 선거법 규정에도 반영되어 있다. 우선 형량의 면에서 앞의 것이 뒤의 것보다 대체로 무겁다.

뿐만 아니다. 제재의 질에 있어서도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현행 선거법에 따르면 선거범죄로 당연히 당선무효가 될 수 있는 경우로 세가지를 규정하고 있다. 선거비용을 초과지출한 경우,당선인 자신의 선거범죄로 징역 또는 금고나 1백5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은 경우,그리고 선거사무장이 매수 관련 범죄로 징역 또는 금고형을 받은 경우이다. 이 가운데 특히 세번째 경우,오직 매수관련 범죄에 한정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파렴치 선거범죄와 단순 선거범죄의 구별을 전제할때 선거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4단계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제1단계는 이를테면 원천적 부정선거의 단계이다. 3·15 부정선거처럼 투·개표 과정 자체가 조작되는 경우이다.

제2단계는 투·개표 과정의 불법은 벗어났으나 매수·폭력과 같은 파렴치 선거범죄가 횡행하는 단계이다. 우리는 지금 이 제2단계에 머물러 있다.

제3단계는 파렴치 선거범죄는 벗어났으나 단순 선거범죄가 상당부분 남아있는 단계이다.

제4단계는 단순 선거범죄도 예외적으로 발생할뿐인 최고의 단계이다.

제3단계와 제4단계는 제도에 따라 구분이 불명확할 수 있다. 선거운동의 자유의 폭을 가급적 넓히느냐 아니면 규제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우리의 당장의 과제는 어떻게 하면 제2단계를 벗어나느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의식의 계도,제도개선과 함께 무엇보다도 엄정한 법집행이 관건이다. 특히 매수와 같은 파렴치 선거범죄를 저지르면 십중팔구 당선무효가 된다는 「제재의 확실성」이 중요하다.

제재의 확실성이 이루어지려면 여러고비를 넘어야 한다. 우선 범죄가 적발되어야 하고 검찰에서 기소되어야 하며 법원에서 무거운 벌을 내려야 한다.

이 고비 하나하나가 실제로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점과 관련해서 한가지 빠뜨리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공명선거를 향한 대통령의 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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