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공약은 어느 나라이건간에 장밋빛 공약이 되기 쉽다. 그러나 역사를 바꿔놓는 현실성 있는 정책비전일 수도 있다. 지난 80년 레이건 미 공화당 대통령후보가 내놓았던 「공급측면의 경제학(Supply Side Economics)」 정책이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세금을 줄이고,정부의 간섭을 축소하며 각종 규제를 완화하여 인플레 없는 경제성장을 이룩하겠다는 것이다. 물가는 오르면서 불황은 깊어갔던 카터 민주당 행정부하의 스태그플레이션에 불만이 고조됐던 여론에 신선한 대안이었다. 결과는 레이건 공화당후보의 압승. 레이건의 경제정책이 결국 실패로 끝났지마는 당시에는 도전적인 시험이었다.지금 부시 미 대통령은 소련 공산체제의 붕괴,걸프전의 승리 등 외교적으로 팍스아메리카나(미국에 의한 세계평화)의 골격을 세워놓는 화려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침체한 경제의 활성화에 실패,공화당 대통령후보 경선에서도 고전하고 있다. 미국경제가 국제경쟁력을 회복하지 않고는 경제가 회복돼도 지속적으로 활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건국 2백여년만에 이룩한 꿈 팍스 아메리카나를 얼마나 지탱할 수 있을지 의문이 간다. 『급히 구함경제정책』이라는 미 타임지의 비아냥이 시사하듯 부시 미 대통령은 경제정책의 『혁신』이 필요하다. 정녕 이것이 필요한 것은 우리나라다.
이번 3·24 총선거야말로 유권자들이 정부·여당과 야당에 대해 날로 국제경쟁력을 상실해 가고있는 우리경제에 제2의 도약을 기대할 수 있는 비전,개혁,결의를 요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앞으로 4∼5년 동안이 중요한 시기다. 한국의 경제는 질·양으로 엄청난 변화가 예상되는 시기다.
제조업이 경쟁력을 다시 찾을 것인가. 기술개발의 진척이 없이는 경쟁력의 회복이 불가능하다. 농촌경제가 사실상의 완전개방에 견디어낼 것인가. 미국의 쌀공세에 어떻게 자기방어를 할 것인가. 원가개념이 없는 중국의 농수산물 쇄도에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은행·증권시장 등 직·간접금융의 자유화를 어떻게 유도할 것인가.
철도·도로·항만·공항 등 사회간접자본 확충은 어떻게 추진하고 돈은 어디에서 조달할 것인가. 한국경제의 최대현안의 하나인 기업 특히 재벌기업의 근대화 즉 문어발식 경영의 지양,기업공개의 확대,자본과 경영의 분리문제 등을 어떻게 타결해 갈것인가. 또한 저소득층과 보호자 없는 아동 및 노년층 등 요구호대상자 등에 대한 사회복지정책을 어떻게 확대,운영해 갈것인가. 유권자들은 지금 눈을 크게 떠야한다. 현재 민자,민주,국민당 등 어느당도 표를 흡수할 수 있는 신선한 경제정책을 내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야당인 민주,국민당은 집권당의 부담이 없어서인지 그래도 여당인 민자당보다는 정책이 상대적으로 개혁의 의지가 엿보이는 것같다. 민자당의 공약은 92년도 경제 운영계획과 7차 5개년 계획의 재탕,진부할 수 밖에 없다. 집권당 답지않게 호남·동서 고속전철 건설 추진 등 의욕만 앞세운 황당한 계획을 내세우기도 했으나 제도 개혁에는 시대를 역행할 정도로 퇴보적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금융실명제. 노태우대통령은 민정당 대통령후보로서 유세때마다 『경제정의 실현』의 대의아래 금융실명제의 실현을 공약했었다. 그러나 『아직 여건이 성숙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기한 연기』해 놓고 있다.
이번선거에서 『단계적 실시』를 내걸었다. 침묵할 수 없어 마지못해 언급만 해놓은 것이다. 이를 실행할 정치적 의지가 전혀 없는 것같다. 여론은 이 공약의 파기가 뭣을 의미하는지 절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것은 비자금,정치자금 등 「검은 돈」과 이에 의한 지하경제의 방치내지 조장을 의미한다. 정부·여당은 「경제정의」의 대의에 등을 돌린 것이다. 한편 민주·국민당은 즉각실시를 공약했다. 나중에 공약이 될지 알 수 없으나 명시했다. 개혁의지의 실종은 죽음을 의미하지 않는가. 이것이 투표의 한 기준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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