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새벽 화마가 할퀸 서울 서초구 서초3동 꽃마을 비닐하우스 단지 2천여평은 검은 잿더미와 소방차에서 뿌려진 물이 뒤범벅돼 처참한 모습이었다.몸만 간신히 빠져나온 주민 1천여명은 날이 밝자 아침밥도 지을 생각을 못한채 잿더미위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넋을 놓고 있었다.
바로 그때 느닷없이 말쑥한 양복을 빼입은 30여명의 젊은이들이 나타나 주민들 사이에 끼어들기 시작했다.
이미 손발 온몸이 새까만 재와 흙탕물로 뒤범벅된 주민들에 비해 깨끗한 양복에 번쩍이는 구두를 신은 청년들은 행여나 흙탕물이라도 튀길까 바짓가랑이를 움켜잡은채 주민사이에 끼어들었다.
짜증이 난 주민들이 『도대체 누군데 이 바쁜틈에 끼어 거치적 거리느냐』며 소리치자 한 젊은이가 『저… 자원봉사 나온 대학생들인데요』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그때 역시 말쑥한 양복차림의 한 청년이 주민자치회 사무실에서 나오며 머뭇거리는 대학생들을 향해 이러저리 위치를 정해주고 이번 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한 한 후보자의 팸플릿을 한 뭉치씩 나누어 주었다.
그제서야 주민들은 이들이 선거운동을 하기 위해 나온 아르바이트 대학생들이란 사실을 깨닫고 분통을 터뜨렸다.
『세상에 집이 전소되고 사람들이 숯덩이가 된 상황에서 선거운동이 도대체 다 무엇이냐』 『자원봉사하러 왔으면 장화라도 신고와 구호작업을 도와야지 깨끗한 양복차림에 흙탕물 튀기는 것을 겁내하며 무슨 자원봉사냐』는 등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졌다.
아르바이트 학생들은 결국 주민들의 비난이 격해지자 30여분만에 머쓱한 표정으로 떠났다.<원일희기자>원일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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