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같은 영롱한 광채 창조 “매력”/세기요구 냉동작업실서 땀흠뻑/완성단계에서 붕괴일쑤 낭패도/파티·연회장식으로 각광… 70여명 활동중얼음조각가인 서울 라마다르네상스호텔 아트실장 허정녕씨(34)는 자신의 작품을 사진으로만 본다. 혼신의 힘을 쏟아 작품을 완성하는 순간 사진으로 찍어 남기는 헤어짐의 의식을 치른다. 한가할때면 사라져버린 자신의 분신들을 사진으로 들여다보며 허전함을 달랜다.
10년 가까운 경력에 이렇게 남겨진 사진들이 수천장이다.
얼음조각은 투명한 얼음이 발산하는 청량감과 깎인면에 따라 보석처럼 빛나는 영롱함,얼음이 녹아내리며 시시각각 변하는 생동감 등으로 화려한 연회나 파티장의 장식으로 각광받은지 오래이다.
허씨는 호텔 냉동실옆 10여평 가량의 작업실에서 하루종일 얼음덩어리를 깎고 다듬는다. 작업장엔 항상 싸늘한 냉기가 감돌지만 허씨의 작업복은 늘 땀에 젖어있다.
재료가 되는 얼음은 제빙회사에서 가로 50㎝,세로 1m,두께 25㎝씩으로 잘라 공급한다.
작품의 크기에 알맞게 여러장을 녹여붙이거나 잘라낸 다음에 조각칼로 밑그림을 그린뒤 요란한 소리를 내는 전기톱으로 대강의 형상을 만든다. 이어 구멍을 뚫는 둥근칼,면다듬이용 수평칼,세밀한 무늬를 그려내는 삼각칼 등 얼음조각용 특수칼을 사용,작품을 완성해 나간다.
거친 얼음표면이 허씨의 노련한 칼로 매끈하게 다듬어지면서 차츰 보석처럼 투명하게 빛난다. 얼음을 다루는 허씨의 손끝과 눈빛은 완벽하게 일치돼 긴장감이 감돈다.
얼음조각에는 남다른 어려움이 따른다. 얼음이 갖고 있는 미묘한 특질때문이다.
우선 영하 10도 이하의 냉동실에 갓 꺼낸 얼음을 30분∼1시간정도 놓아둔다. 너무 찬 얼음은 딱딱해 잘 깎이지 않는데다 잘못 톱을 들이대면 짜악 갈라져 나간다. 조각을 할때도 늘 얼음결을 건드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함은 물론이다.
잘못 다루어 깨져나갔을 때는 소금이나 부탄가스로 깨진부분의 온도를 낮추어 붙이는 기술이 있기는 하지만 대개 완성단계에서 사고가 나기때문에 낭패하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얼음의 녹는 성질때문에 완성시간을 세밀하게 맞추어야 한다. 얼음조각이 가장 아름다운때는 표면이 어느정도 촉촉하게 녹았을 때이다. 그래야만 칼자국으로 거칠어진 표면이 매끈하고 아름답게 변한다. 물론 시간이 더 경과해 버렸을때는 본래의 형체가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얼음은 또 재질이 약하기 때문에 무게를 정묘하게 배분해야 한다. 외형의 아름다움만을 좇다가는 무게를 감당치 못하거나 중심이 쏠려 무너져내리기 때문이다. 녹는 정도에 따른 무게중심의 변화도 염두에 두어야한다.
얼마전 회갑연에 내놓은 학조각이 연회시작 1시간만에 무너져내리는 바람에 크게 낭패한 적이 있다.
조명도 얼음조각의 성패에 큰 영향을 미친다. 조명색깔에 따라 조각전체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조명의 강도가 얼음상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조명이 너무 강하면 빛살에 의해 얼음내부가 손상돼 깨져버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얼음조각은 작은 소품일 경우에는 하루에도 몇개씩 만들수 있으나 수십장규모의 대작에는 며칠씩 걸리기도 한다.
허씨는 서일전문대 디자인과에 재학중이던 지난 83년 아르바이트삼아 힐튼호텔에 나가 어깨너머로 얼음조각을 익혔다.
졸업후에도 이일에 매료돼 손을 놓지못하다가 솜씨를 인정받아 88년 라마다르네상스호텔 개관때 스카우트됐다.
허씨는 86년 일본 북해도에서 열린 세계얼음조각대회에 동료 1명과 함께 참가,얼음 20장을 사용한 높이 3m30㎝,폭 3m의 대형 「십장생」상을 제작해 노력상을 받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지난해 3월 전세계 라마다호텔체인중 르네상스호텔이 최우수호텔로 지정됐을때 자축연에 내놓은 군마상이다. 말 4마리가 도약하는 모습의 이 조각은 높이 3m50㎝의 대형으로 얼음 35장을 사용해 3일이 걸렸다.
현재 국내의 얼음조각가는 70여명으로 「얼음조각가협회」까지 구성돼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다.<이태희기자>이태희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