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만으로 척척… 「위스키 석사」/세계 수백종의 맛·향 「혀끝 입력」/국내 2명뿐… 고도의 집중필요이종기씨(32·OB씨그램(주) 품질관리과 차장)는 우리나라에 단 두명 밖에 없는 「마스터 블렌더」(Master Blender)이다. 우리말로는 적당한 명칭이 없으나 굳이 옮기자면 최고의 기능을 지닌 술배합사,또는 술감정사 정도일 것이다.
이씨의 코와 혀끝에는 전세계 수백종류의 위스키 맛과 향이 모조리 입력돼 있다. 눈감은채 위스키 한방울의 향이 코끝을 스치기만 해도 그 미묘하고 섬세한 차이로 어김없이 술의 이름과 숙성햇수까지 짚어낸다.
이씨의 일은 스코틀랜드산 수입위스키 원액들을 적절한 비율로 배합,원하는 맛과 향을 지닌 시판용 완제품 위스키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평소 과묵한 이씨지만 위스키 이야기만 꺼내면 달변이 된다. 『내 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술의 제조과정부터 알아야 한다』는 이씨는 『위스키는 원료에 따라 몰트·그레인·블렌디드위스키의 3종류로 분류된다』고 설명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스카치 위스키는 지역구분에 따른 이름으로 스코틀랜드산 원액을 사용한 위스키를 뜻하는데 스코틀랜드산 원액이 세계시장의 90% 이상을 점하고 있으므로 우리가 마시는 위스키는 대부분 스카치로 보면 된다는 것이다.
맥아에 물과 효모,호프를 섞으면 맥주가 되는 몰트위스키는 이중 호프를 뺀 나머지 원료를 증류,숙성시켜 만든 술이다. 대표적인 몰트위스키로는 「더글렌리벳」「글렌피딕」을 들 수 있으며 향이 풍부하고 맛이 강한게 특징이다.
그레인위스키는 보리대신 밀이나 옥수수를 사용한 것으로 맛과 향에 특징이 없어 그 자체로 제품을 만든 것은 거의 없으며 몰트위스키와 섞어 제품을 만드는데 쓰인다. 몰트위스키와 그레인위스키를 섞는 것을 블렌딩(Blending)이라 하며 이 과정을 거쳐 나온 술이 블렌디드위스키다.
블렌디드위스키는 맛과 향이 부드러운데 「시바스리갈」「발렌타인」「J&B」「조니워커」등 외국의 유명위스키 대부분이 이에 해당된다. 국산양주는 1백%가 블렌디드위스키다.
수입원액들은 같은 지역,같은 원료,같은 사람이 제조했다 하더라도 술이 담겨있는 오크통에 따라 미세한 차이가 있게 마련. 따라서 일관된 품질의 위스키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원액배합 비율이 미묘하게 달라져야 한다.
이씨는 이 일을 위해 매일 적게는 5∼6종류에서 많게는 20∼30종류의 배합된 위스키를 감정한다.
술깨나 좋아 하는 호주가들이라면 온종일 최고급 술맛을 보는 것이 직업인 이씨를 부러워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씨는 자신의 일이야말로 엄격한 집중력과 절제가 필수적 이어서 애주가들의 상상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우선 그는 술을 마시는 일보다는 냄새만으로 판별한다. 직접 맛을 보면 입안이 자극에 둔감해지므로 여러종류를 정확하게 감별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알코올 도수가 20도가 넘는 술은 후각을 마비시키므로 40∼43도의 위스키에 증류수를 섞어 도수를 낮춘뒤 1시간 가량 유리로 덮었다가 열어 차츰 잔의 입구에서부터 안쪽으로 서서히 코를 디밀며 향을 맡는다. 잔의 입구쪽과 술표면 근처의 향도 또 미묘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향이 너무 독특하거나 이상할 경우에 한해 직접 맛을 보기도 하는데 이때 제대로 배합된 술은 호수에 파문이 번지듯 입안에 고루퍼지지만 잘못된 것은 한쪽으로 쏠리는 느낌을 준다.
서울대 농화학과 재학시절부터 「막걸리통을 끼고 살다시피 했던」 이씨는 80년 졸업후 OB에 입사,품질관리를 맡아하다 선배들로부터 기본적인 술감정법을 익힌뒤 스코틀랜드의 해리옷 와트공대에 유학,양조 및 증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술에 관한한 최고권위 기관인 IOB(국제양조협회)는 이 대학 석사학위 이수자에게 자동으로 회원권을 준다.
이씨는 지금도 양주 큰병 하나를 앉은자리에서 거뜬히 비우는 호주가이며 소주·막걸리 등 종류를 가리지 않는 애주가이다. 그러나 스스로 그렇게 공들여 만든 위스키를 폭탄주니 수소탄주니 하며 숭늉마시듯 하는 우리의 음주습관을 보면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이만저만한 낭비가 아니라는 생각도 하게된다.
국내에서는 이씨 같은 전문 술감정사가 5명 정도 있다. 그중에서 양조석사학위를 가진 사람은 이씨를 포함,2명밖에 없다.
이씨는 개인적으로는 외제양주로 「더 글렌리벳」과 「시바스리갈」을 들기좋아 한다. 「더 글렌리벳」은 상쾌하면서도 깨끗한 맛이 좋고 「시바스리갈」은 풍부하면서도 남성다운 맛이 마음에 든다는 것이다.
이씨는 앞으로 위스키뿐 아니라 럼·보드카·진·브랜디 등 모든 술종류로 감정영역을 넓혀가는 것이 꿈이다.<홍희곤기자>홍희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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