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군 6·25참전 모 명령설 근거없다”/“소와 교신내용 미에 포착될줄 뻔히 알면서/출동일등 극비사항 전문통보 어불성설/공개자료 진본여부도 의문”【홍콩=유주석특파원】 중공군의 한국 참전이 모택동의 독단적 결정이었다는 미뉴욕타임스의 최근 기사는 그 신빙성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분석이 재기됐다. 중국 문제에 정통한 홍콩의 유력지 명보는 3일 사설을 통해 타임스가 입수했다는 당시 중소간 전문 및 자료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설사 이 자료가 원본이라 하더라도 근본적인 해석상의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3일자 명보사설의 주요내용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주 모택동이 지난 50년 10월2일 스탈린에게 보냈다는 전문 내용을 입수,특종보도했다. 이 기사는 문제의 전문으로 지금까지 소련의 지시와 요청에 따라 중공군이 마지못해 출병했던 것이라는 통설과 달리 모가 군사모험을 자청,미군과의 직접 교전에 참전한 사실이 밝혀졌다고 했다. 문제 자료의 출처에 관해 이 기사는 분명히 밝히지 않고 다만 서방측이 최근 입수하게된 것이라고만 말했다. 중공군 참전의 동기와 배경은 지난 40년여간 역사 학자들이 그 해답을 추구해온 미해결의 문제로 남아있다. 이 기사는 문제 전문을 토대로 중국이 당시 일체의 여건들을 고려하지 않고 한국전에 참여한 이유를 『모가 미군이 한반도에서 승리하는 경우 곧바로 중국 자신의 위협이 될것으로 우려한 때문』이었다고 보도했다. 타임스가 입수했다는 자료들은 구소련 해체 이후 모스크바 관계 당국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그것이 진짜라면 최근세사 연구에 참고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음에 틀림없다. 그렇더라도 그 내용을 타임스의 해석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다.
이 문제의 전문이 진짜라 하더라고 그것은 중·소간 한반도 출병문제를 놓고 이미 수개월에 걸친 협의가 계속된 끝의 결론 단계에서의 한가지 교신 내용에 불과하다. 모는 이 전문에서 스탈린에게 중국이 출병을 결정했다는 사실을 통보하고 『우리는 이 결정이 정확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런 귀절만으로 중국이 스스로 참전을 결정했음을 증명한다고 보기에는 불충분하다. 그것은 소련(스탈린)이 우리의 출병을 요구키로한 결정이 정확한 것으로 생각한다는 의미로도 해석 가능하다. 더욱이 이 전문이 절대로 진본이라고 단언할 만한 확증이 없다. 이 전문은 출병 예정시기의 통보 이외에도 중공군 참전부대의 병력,장비는 물론 장차 전술전략 내용까지도 상세히 기술한 것으로 돼있다. 이런 전문이 미 정보기관에 입수되는 경우 전쟁 자체에 극히 중대한 영향을 끼치게 될 내용들이다. 당시 모가 미 정보기관에서 중국의 암호전문 등을 입수,판독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할 만한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또 모가 이런 군사기밀내용을 하필 전보로 통보해야만 될 이유가 있었는가. 밀사 한명을 비행기편으로 모스크바에 파견할 경우 불과 몇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중국이 소련의 지시에 따라 출병한 것이라는 지난 40여년의 통설은 그것이 비록 확증이 없는 추리라고 해도 상당한 근거와 신빙성을 갖고 있다. 50년대 초기 공산진영의 맹주는 스탈린으로 북한의 남침,중공군 참전 등 중요대사를 그의 판단없이 중국독단으로 결정한다는 일은 생각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또 만일 중국이 참전까지 않더라도 비로 미국이 남한을 무력지원,북한을 점령한 후 중국침공까지 미국 당국으로 결행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이 당시 정세에 대한 일반적인 분석이다. 설사 미국이 중국 침공의사를 가지고 있었더라도 이를 위해 굳이 북한을 먼저 점령해야할 필요는 없었다. 대만의 국민당을 앞세운 중국 동남부 연해지역에 대한 「반정」등 북한 이외 지역들로부터의 침공의 길이 열려 있었다.
중국은 당시 내전끝에 막 공산정권을 수립한 직후로 외국과의 대규모 전쟁에 나설만한 여력이나 관심이 없었다. 이에비해 스탈린은 북한 공산정권의 구출과 중국의 희생을 통한 대미 타격 등을 노려 중국 참전을 강력히 바랐을 가능성이 더 크다.
이런 경세분석이나 추리들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한가지 분명한 것은 어떻든 중국의 참전을 최종 결심한 것은 모이며 적어도 대외적으로는 당연히 소련의 지시때문이 아니라 중국의 자체적 결정인 것처럼 할수밖에 없었으리라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말하자면 중국이 소련의 명령에 따라 출병했다는 내용의 공식 문건은 남아있기가 어려울 것이다. 40여년전에 중국의 참전이 모의 독자 결정이냐 스탈린의 지령에 따른 것이냐는 역사적 의문에 대한 해답은 더욱 많은 사료의 발굴,공개가 축적돼야 하며 단편적 자료에 의한 섣부른 결론은 금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