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 「지록위마」의 고사는 권세의 농락을 지적한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중국 진나라의 조고는 2세 황제의 환심을 사서 권력을 독점하려고 시험 삼아 사슴을 바치고 말이라고 했다. 황제는 「사슴을 말이라고 하다니」하고 신하들에게 물으니 어떤 사람은 입을 다물고 어떤 자는 맞는다고 맞장구를 쳤다. 사슴이라고 바른 말을 한 사람은 그후 처단당했다고 한다. ◆사슴은 사슴이지 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우긴다면 그게 억지다. 민자당의 전국구후보가 발표되자 여론은 크게 실망하고 비난이 뒤따랐다. 너무 「사연」에 얽매이고 특정지역 특정부문의 인사에 치우쳤다는 인상을 변명으론 지울수가 없다. 인선이란 으레 뒷말이 많고 어렵다는 실토는 차라리 순진하기라도 하다. 고충을 알아 달라는 간청의 뜻이나마 풍기기 때문이다. ◆여당의 선거대책본부는 악화된 여론을 진화하려고 덤벙대고 있는 것 같다. 언론의 분석이 잘못되었다고 발뺌을 하면서 직능별로 훌륭한 사람이 많이 영입되었다고 강변하는 것까지는 그렇다고 해두자. 「전문성의 기능을 발휘할 정치인도 꽤 있다」는 주장은 해명도 변명도 아니다. 그런 논리라면 직능별 전문성이란 것은 있을 수가 없다. ◆하긴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만능선수와 같다. 어떤 자리라도 차지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는 강심장을 갖추고 있다. 권세의 대열에 끼여들 재간이 있으면 전문성쯤은 문제 삼지 않아도 된다는 자세이고 그것을 신념으로 여기는 흔적이 역연하다. 전문성을 활용할 정치인이 많다는 말은 사슴을 말이라고 하는 억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총선거 공고를 앞두고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정치불신이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아직은 선거 자체에 대해서 냉담한 실정이다(한국일보 7일자 1면). 왜 그런지 곰곰 반성해 볼 일이다. 잘못은 솔직하게 시인하는게 낫다. 정치가 체통을 찾는 길은 지록위마의 고사를 되씹어 보고 억지를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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