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12일자 본란에 「오이꽁지」란 제목으로 정주영 국민당 대표의 정치입문의 아쉬움을 쓴바있다.이글이 나간후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글 내용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극히 일부는 전화로 욕을 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오이꽁지를 씹은듯 쓴맛을 보았다. 정치인 정주영씨의 앞길이 어떨지 알 수 없으나 그 쓴맛은 지금도 여운으로 남아 있다.
오이꽁지에는 쿠쿠르비타신(Cucurbitacin)이란 탄수화물의 일종이 들어있어 쓴맛이 난다. 이 쿠쿠르비타신은 물에 잘녹지 않고 열로도 분해되지 않는다. 현재는 이 쓴맛을 제거하는 방법이 없어 잘라버리는 수 밖에 없다. 버리기 아깝다고 꽁지까지 먹어치우다가는 오이전체의 맛까지 그르치기 십상이다. 미련은 금물이다.
민자당의 전국구 후보명단을 대하니 또 다시 오이꽁지 씹은듯 입맛이 쓰다. 현대건설에서 정주영씨의 오른팔처럼 보였던 이명박 전 현대건설 회장이 명단에 끼여 있어서만도 아니다. 이 부분도 한 원인이 됐음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전체의 흐름이 그렇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 또 어떠한 정치의식 및 판단에서 이처럼 균형감각을 잃은 명단을 전국구 후보란 이름으로 내놓게 됐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명박씨 건은 이씨와 정씨의 내면관계를 모르니 뭐라할 수 없으므로 「정치란 그런것 아니냐」고 치부한다고 해도 전체적인 입맛이 개운치 않다.
전국구는 전문직능 인사를 발탁해 지역구의 대의기능을 보완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런점에서 이 제도의 기본원칙은 「짜임새」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의 의사가 고루 반영될 수 있도록 각계의 전문직능인사를 짜임새 있게 배치해야 한다.
바로 균형감각이다. 발표된 민자당의 전국구 명단에선 정치계·TK·군 출신 등을 빼면 직능대표는 당선권안에 손꼽을 정도이다. 기름빼고 따귀빼고 나면 별로 남는것이 없다는 격이다. 짜임새가 무너져도 너무 무너졌다. 「민주화」에 걸맞는 인재발탁이 이런 것인지 이해가 안간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당선권에서 벗어난 순위에 배치돼 반발하는 당료 출신들에게 선거후 개각 등으로 상위권 일부가 입각 등으로 의원직을 사퇴하면 이를 계승할 수 있다고 달랜다고 한다. 보도대로라면 국민을 무시해도 정도를 넘어선 것이다. 그러한 사람은 처음부터 명단에서 제외하고 직능대표로 대신했어야 한다.
국회의원을 거쳐야 장관 등이 된다는 법은 없다. 이것은 전국구 의원을 주머니속의 사유물처럼 생각하고 있지 않나 하고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전국구 의원을 사유물처럼 여기는 상황에선 전국구란 제도는 없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름 그대로 전국을 하나의 선거구로 해 유권자들의 직접투표로 62명의 의원을 선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번과 같은 명단이라면 가능한 한 국민의 의사를 살린다는 이 제도의 참뜻은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것이 오이꽁지처럼 버리기 아까워 먹다가 생긴 쓴맛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옛날 우리나라 선비들은 벼슬을 하다가도 때가되면 모든 것을 털고 낙향해 「보통사람」으로 돌아갔다. 전 대통령이 하야후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다가 쓴맛을 본 사실도 알고 있다. 주위에 대한 의리도 중요하지만 국민에 대한 의리가 우선한다.
지역에,출신에,개인적 관계 및 뒷일에 연연하지 않고 모든 것을 툭툭 털고 일어서는 정치지도자를 보고 싶다. 버리기 아까워 먹는 오이꽁지는 역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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