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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커와 편지/김창열칼럼(토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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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커와 편지/김창열칼럼(토요세평)

입력
1992.03.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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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평론가가 이런 글을 썼다.『권력의 성은 축제 때 문을 연다. 그때 비로소 성밖에서 웅성거리던 백성들은 성 안에 들어가 구경도 하고,이것 저것 말참견도 하고,때로는 성주를 바꾸기도 하는 기회를 갖는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다시 성문은 굳게 닫히고 만다』

그가 말한 축제란 총선이다. 그 축제때의 백성을 유권자라고 한다. 미국의 독설가 앰브로즈 비어스(1841∼1913)가 쓴 『악마의 사전』을 보면,그들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유권자(명)=남이 고른 사람에게 찬성표를 던지는 신성한 특권을 누리는 사람』

엊그제 여당이 발표한 나눠먹기 전국구 후보의 면면을 살피면서,1백여년전 비어스의 독설이 오늘 이땅에서 더욱 타당함을 깨닫는다. 과연 그 면면은 「남이 고른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달리 표를 던질 「신성한 특권」마저 누리지를 못한다. 오히려 비어스의 독설도 독기가 모자랄 지경이 아닌가. 지난 몇달 밀실공천이 빚어냈던 온갖 잡음과 소란,그렇게 밀실에서 「남이 고른 사람」들을 끼고 벌어지는 사전운동의 온갖 불법과 추태를 아울러 생각하면,화가 치밀기까지 한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래가지고 정치가 온전할 수 있을까.

이런 가운데 오늘 총선이라는 「축제」의 문이 열린다. 아마 공명과 승리를 다짐하는 정부와 여야당 높은 사람들의 담화가 쏟아질 것이다. 선거 혁명·유권자 혁명을 외치는 소리도 드높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잡음과 소란,불법과 추태는,이번 「축제」가 결코 그런 담화나 외침같지만은 않을 것임을 경고하는것 같다. 그 경고중에서도 가장 고약한 시나리오는 다음의 정치콩트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남북전쟁 뒤 미국의 흑인들은 선거권을 얻었으나,인두세를 낸 영수증이 있어야 투표할수가 있었다. 그래서 어느 고장의 흑인들이 자기네 대표를 국회에 보내기로 뜻을 모으고,모두가 없는 돈을 털어 인두세를 자진납부했다. 그러자 백인들이 서커스단을 보냈다. 입장은 무료,그대신 인두세 영수증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과연 서커스는 대만원이었고,투표소에 나타난 흑인 유권자는 한사람도 없었다.

선거란 본디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4년에 한번 「축제」때만 반짝한다. 나눠먹기·편짜기·매관매직으로 「신성한 특권」은 반편이 된다. 그것도 모자라서,서커스판을 벌여 놓고 사람을 「검둥이」 대접하려든다.

그런 서커스가 지난 이 땅에서도 판을 친다. 따지고 보면,그 서커스란 별것이 아니다. 속 들여다 보이는 선심,언젠가 들었던것같은 정부·여당의 재탕공약들,실현 가능성은 없어보이는데 그저 씩씩하기만한 야당의 공약들이 모두 그런 서커스에 든다. 대통령의 지방순시,정당 대표들의 두손 번쩍 들기 지방행차,어떤 재벌총수의 좌충우돌도 서커스의 한 장면이나 같다.

그런 서커스가 이미 시작이 됐고,그 곡예가 점입가경하리란 것이 오늘 「축제」 공고의 또 다른 뜻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의 예고편을 보건대,앞으로의 서커스 비용이 한 나라 경제를 기울일만큼 엄청날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이를 막기에는,지난해 여야 선거협상으로 만들어 낸 지금의 법과 제도장치가 별 소용없음도 이미 다 드러났다. 그래서 서커스는 멈추지를 않는다. 그래서 서커스에 홀린 「검둥이 반편」이 적잖이 생겨난다면 어찌 될까. 그래가지고도 나라가 온전할 수 있을까.

「축제」를 선포하는 날 아침의 기상은 이처럼 밝지를 못한다. 이번 선거가 역사상 가장 혼탁하리란 예측기사를 읽는 심정은 착잡할 수 밖에 없다. 32년전 3·15부정선거까지 끌어댄 글에서 섬뜩함을 느낀다.

그러나 이제는 법과 제도를 탓할 겨를이 없다. 벌써부터 줄타기 곡예에 정신이 팔려있는 「남이 선택한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기대할 것은 「성문 밖에서 웅성거리던 백성들」,바로 우리들뿐이다. 「축제」의 문이 열린 마당에,우리는 웅성거리고만 있을 수가 없다. 스스로 공명선거를 다짐하고,그 다짐대로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런 다짐과 말과 행동을 아우를때,그 힘은 엄청난 것이 된다.

다행히 우리는 지금 우리의 다짐과 말과 행동을 결집할 구심점을 갖고 있다. 2백여 사회·종교단체가 참여하는 공선협이다. 그 조직은 지금 말단 시·군까지 뻗어가고 있다.

우리는 이런 시민운동에 품을 보탤수가 있다. 돈을 보탤 수도 있다. 선거감시·고발활동에 참가할수도 있다. 그도 저도 어려우면,공선협의 공명선거 스티커를 얻어다가 내집 대문에 붙일 수는 있다. 그로써 우리는 주권자로서의 긍지를 밝힐 수가 있다. 금권·타락선거를 배격하는 떳떳함을 자랑할 수가 있다. 공선협 계획대로 공명스티커 1천만장이 전국 가가호호에 붙어있는 광경을 생각해 보자. 그쯤 되면,공명선거의 희망을 걸 수가 있겠다. 이런 경우에,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는 게으름은 죄짓기나 다름 없다.

다음은,공명선거의 결단을 정치권에 촉구하는 데도 우리 힘을 모을수가 있다. 지금처럼 타성이 붙은 혼탁선거 양상을,어떤 결단없이 멈추게 하기는 어렵다. 그것도 지금 당장에 아쉽기는 대통령의 결단이요,좀더 결연한 그의 자세다.

이를 위해서,우리는 말을 해야 한다. 대대적으로 여론을 환기해야 한다. 그보다는,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으로서는 대통령에게 직접 편지를 쓸수가 있다. 직접 보고 들은 선거양상을 있는 그대로 알리고 공명선거의 비상한 대책을 호소할 수가 있다. 그리하여 청와대가 편지로 뒤덮였다고 생각해보자. 이것 역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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