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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당」과 「장군당」(시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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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당」과 「장군당」(시사칼럼)

입력
1992.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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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온 나라는 14대총선 열풍에 휩싸여 관권·금권·불법·타락선거를 둘러싼 소용돌이에 빠져 들어가고 있다. 여권무소속인사와 신당후보의 출마와 관련한 압력 및 공식정치시비,선거운동과정에서의 금품수수와 여당후보의 구속,각 정당의 지나친 공약 제시,각급 행정기관을 동원한 행정선거의 징후,사상 초유의 재벌신당 등장,정부와 재벌의 갈등,각 정당의 지역감정 선동,정당지도자들의 무분별한 「바람몰이」시도,냉담한 유권자와 일부 「선거꾼」의 횡포,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활동에 대한 폭력적인 저지,민간 감시기구의 활동에 대한 유무형의 방해 등이 14대총선을 공명선거와 더욱 멀어지게 하는 일들로 지적되고 있다.한국의 역대선거를 통해 볼때 늘 국민들은 공명선거를 열망하고 정당과 정부도 이를 추진한다고 하면서도 불법·타락선거의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하기에 급급하였다. 선거과정에서의 불법·부정·혼탁의 정도가 클수록 선거이후의 후유증이 장기화·심화되어 정치불안의 요인이 되는 악순환을 반복해왔다. 14대 총선을 맞고 있는 지금도 과거 역대선거의 양상과 매우 흡사하게 관권·금권선거가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역대선거와 달리 이번 선거에서 보이는 가장 큰 변화는 한국 최대재벌인 현대그룹의 정주영 전명예회장이 중심이 되어 창당한 통일국민당의 등장이라 할 수 있다. 정부와 재벌간의 심화된 갈등을 배경으로 범여권에 기반을 둔 국민당이 창당되면서 집권여당인 민자당과의 위상이 미묘하게 되고 상대방에 대한 비판과 공격이 치열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국민당이 「재벌당」으로 지칭되고 민자당은 「장군당」으로 불리게 되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국가와 재벌의 유기적인 관계는 필연적이기 때문에 때로는 「정경유착」이나 「군산복합체」로 비난을 받으면서도 정부와 재벌은 각자본연의 기능과 역할을 협조적으로 수행하기를 모든 국민은 바라는 것이다. 후기후발산업국가로 냉엄한 세계경제시장에서 외국기업과 치열한 경쟁을 통해 국가발전을 이루고 국가위상을 높이는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정부와 기업이 사이좋게 맡은 바 역할을 잘 수행해온 것에 대해 국내에서는 물론 외국에서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지난 30여년간 정부와 기업의 역량과 지위는 크게 변화하여 왔다. 전반기에는 정부가 월등한 물적기반을 바탕으로 외국자본을 유치하고 국내기업을 육성·보호하여 재벌기업으로 성장시켰는데 반해 후반기로 올수록 재벌의 위상과 권력이 강화되어 정부와의 관계도 재벌 우월적인 관계로 반전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13대국회의 「여소야대」정국을 「여대야소」정국으로 전환시킨 「보수대연합」과 이 과정에서의 재벌의 역할을 들고 있다. 이러한 위상변화를 「장군당」의 지도층이나 정부에서 충분히 인정하지 않자 「재벌당」이 「장군당」을 타도의 대상으로 삼고 「경제와 국가」를 살리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14대총선에 직접 나서게 된 것이다.

영국 독일등 서구 선진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보수세력과 진보세력이 각각 정당으로 조직화되고 정책대결을 통해 국민들의 심판을 받음으로써 국민복지와 민주정치를 잘 조화시키고 있다. 한국에서도 「구국의 결단」으로 보수대연합이 추진되었으나 정치발전이나 경제성장에 기여하기 보다는 도리어 보수세력내부의 균열과 갈등만 심화시키게 된 결과를 가져왔다.

여기에는 진보세력의 미약,보수이념의 결핍,지도력의 결여,지나친 지역주의와 족벌주의,집단이기주의 등이 주로 작용하였다.

재벌당과 장군당이 겨루는 14대총선의 결과와 그 이후가 역대선거때와 달리 크게 우려되는 징후가 이미 여러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6공정부와 현대의 갈등을 정치자금 거부설,김영삼 지원 응징설,정치적 비판관련 발언설,TK재벌 대 비TK재벌 갈등설,내각제 개헌음모 관련설,경제정책 불화설,경제민주화설,신당추진응징설 등 다양한 가설로 추측·해석할 수 있듯이 재벌당의 선거결과에 따른 정부와 재벌의 관계도 이와 유사하게 해석할 수 있겠다. 그러나 공통된 것은 정치와 경제의 관계는 더욱 구조화·유착되고 경제의 정치에 대한 영향력은 크게 될 것이란 점이다.

정부의 현대그룹에 대한 세금징수,금융제재 등이 현대그룹뿐만이 아니라 재벌그룹의 집단적인 대응으로 나타나고 이를 국민당에서는 민자당과의 선거전략에 이용하는등 정치와 경제,재벌당과 장군당의 관계는 더욱 복잡하게 얽혀가고 있다. 선거과정이나 선거이후에 정부·정당·기업 모두가 깊이 관련되고 승리와 패배를 맞게 되겠지만 중요한 것은 모든 정치·경제·행정의 행위주체들이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냉정하고 합리적인 자세를 회복하는 일이다. 특히 「한풀이」「보복」「자해」와 같은 비정상적인 행태를 청산하고 건전한 자세로 되돌아 갈때 정치와 경제 모두가 살아나 지속적인 국가발전이 가능할 것이다.<김석준 이대교수·정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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