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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품 올림픽/정경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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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품 올림픽/정경희(칼럼)

입력
1992.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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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잘알려지지 않은 얘기를 들은적이 있다. 버들표로 유명한 제약회사 「유한양행」의 창업자 유일한에 관한 측근의 얘기라고 했다.유일한이 눈을 감은 21년 전만해도 유한양행은 당당한 대기업이었다. 그는 45년동안 키워온 대기업을 그의 아들·딸에게 넘겨주지 않고 사회사업과 교육사업을 위해 사회에 「기탁」했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

유일한은 기업인으로서 영원한 교훈을 남겼을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감동적인 교훈을 남겼다. 그에게는 낡은 양복 두벌 밖에 없었다고 한다. 죽음이 임박했을때 그는 유언했다고 전했다. 『내가 죽거든 따로 수의를 만들지 말고 입던 양복을 입혀서 장례를 치르라』는 유언이다.

대기업가 유일한이 낡은 양복 두벌로 지냈다면 요즘 사람들에게는 선뜻 믿기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저승길도 그 옷을 입고 갔다면 상상할수도 없는 일일 것이다.

원래 이땅의 교양인에게 사치와 낭비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근검·절약은 교양인에게 기초적인 도덕률이었다. 「예기」라는 고전은 남자가 관례를 올리는 스무살이 되고서야 비로소 「명주옷」을 입을 수 있다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또 부처도 일렀다. 『불을 켜놓고 눕거나 금·은이나 몸치장할 의복을 쌓아두지 말며,높고 넓은 침상이나 화려하게 꾸민 자리에 앉거나 눕지말라』(열반경).

그러나 이런 전통은 이제 옛날 얘깃거리나 같다. 공업진흥청에서 국산품과 수입품의 품질비교 결과를 발표해도,수입품이 국산만 못한데도 값은 두배 세배 비싸다고 소리높여 외쳐도 소비재 수입은 껑충 껑충 뛰고있다. 「같은 값이면」나쁜 물건을 사자는 한국형 얼간이 소비병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의 국제수지 적자는 사상 최대인 88억달러. 생선횟감으로 일본에서 활어 1억5천만달러 어치를 들여오고 15만원짜리 여자팬티에 아이들 문방구나 전화기에서 재벌들 자가용 제트기에 이르기까지 「세계 사치품 올림픽」이 흥청대고 있다. 그래서 지난해 소비재 수입이 81억달러나 됐다.

소비재 수입은 올들어서도 계속 뛰고 있다(무역협회 발표). 이대로 간다면 한국은 영원히 적자를 면치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얼간이 졸부들에게 근검·절약 하라고 설교해 봤자 소귀에 경읽기일 것이다.

얼간이들의 「과소비」를 설교로 해결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면 웃음거리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불로소득 이라는 돈벼락을 놔둔채 설교만 일삼는다면 사치품 올림픽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선거야말로 이런 문제를 토론하는 정책대결의 무대가 돼야 한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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