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정기 주주총회가 끝났다. 주총인사와 관련해서는 해마다 말이 많지만 이번에는 과거와 차원이 다른 몇가지 현상이 나타났다.가장 대표적인 특징은 은행인사에 노조의 개입이 공식화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지방소재 D은행의 경우 노조대표들이 재무장관실에 들러 특정임원(전무)을 퇴진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노조가 은행내부에서 인사불만을 표시한 사례는 더러 있었지만 주총을 앞두고 특정임원의 퇴임을 주무장관에 공식 요구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K지방은행도 이 방면에서 신기록을 세웠다.
신임이사 선임과 관련,노조가 낙하산식 인사라며 강력 반대하는 바람에 주총진행이 장시간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결국 은행장·주주대표(4명)·노조대표(2명) 등 7명으로 구성된 임원선임 전형위원회서 『다음부터는 낙하산식 인사를 거부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노조대표의 전형위원회 참여는 예전 같으면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소위 「노치금융」의 싹이 돋고 있다.
또 하나의 새로운 현상은 경쟁자에 대한 근거없는 「음해공작」이 노골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H은행의 경우 은행장이 뜻하지도 못한 스캔들에 휘말려 곤욕을 치렀다.
사정당국의 조사결과 현직 전무가 은행장자리를 노리고 루머를 만들어 발설한 것으로 밝혀져 관계자들을 경악케 했다. 정치권의 악습으로만 여겨왔던 마타도어가 은행에까지 번지기 시작한 대표적 사례이다.
S은행과 J은행에서는 은행장인사와 관련,금융계 안팎의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한 이변을 연출했다. 연임이 확실한 것으로 알려졌던 은행장이 주총 전날 전격 퇴임하고 생각지도 않던 사람이 「대권」을 쥔 것이다.
그야말로 「스케이트날 하나 차이」로 희비가 엇갈렸다. S은행의 경우 순리가 역리를 이긴 게임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관치금융의 극치를 보여줬다.
은행인사가 해가 갈수록 엉망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질서도 없고,그렇다고 영이 서있지도 않다. 이를 틈타 일부에서는 은행인사를 주주에게 일임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은행의 재벌 사금고화라는 함정이 있다.
「얼굴없는 인사권자」가 전화 한통화로 은행장 목을 좌우하는 것도 큰 문제다. 정부가 은행인사에 음성적으로 개입할게 아니라 개입이 불가피하다면 그 이유를 솔직히 털어놓고 일정한 원칙을 정한 다음 개입하면 그래도 질서가 잡혀나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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