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생 국내선 「낙오자」/우등생 “주입식 못견뎌”지난 1월 LA로 유학가는 딸을 비행기에 태워 보낸뒤 A모씨(50·회사간부)는 많이 울었다. 이제 중3이 되는 외동딸과 헤어지는 것도 슬폈지만 수만리 이국땅에서 혼자 갖가지 어려움을 겪어야 할 딸아이가 애처로워 견딜 수 없었다.
『내 딸을 왜 내가 데리고 공부시킬 수 없느냐. 도대체 이런 나라가 어디에 있는가. 교육부는 뭘하는 곳인가』
A씨는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에 대한 원망까지 겹쳐 대성통곡했다고 한다.
서울 강남의 모중학교에 다닌 A씨 딸의 성적은 학급에서 중간정도.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한 과목에 25만∼50만원씩,3과목에 1백여만원을 들여 과외공부를 했지만 성적은 잘 오르지 않았다. 딸이 2학년 2학기에 접어들자 A씨는 남의 일로만 여겼던 조기유학을 심각하게 고려하기 시작했다.
강남지역에서도 한반에 겨우 15∼20명 정도가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는 현실에 새삼 놀랐다. 『만약 대학을 못간다면 변변한 혼처도 못구할게 아닌가』하는 불안도 커져갔다.
A씨는 10여년전 LA로 이민간 형에게 전화를 걸어 딸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형은 『아이 버린다. 유학은 공부 잘하는 학생이나 하는 거지 아무나 할 수 없다.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 직접 와서 봐라』며 펄쩍 뛰었다.
그러나 A씨는 끝내 딸을 보내기로 결심하고 말았다. 『내 아이 실력 내가 압니다. 발버둥쳐봤자 대학에 못갈게 뻔하고 그 뒤에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A씨는 『그래도 교육기회가 많은 미국에서 대학은 나올 수 있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2년여전 고2 딸과 중3 아들을 LA로 보낸 Y씨(48·의사)의 동기는 A씨와는 다르다.
남매는 반에서 1·2등을 다툴 정도로 공부를 잘해 명문대 입학을 바라봤다. 그러나 Y씨는 가족과 함께 6개월간 LA 모대학의 객원연구원으로 머물면서 아들을 조기유학시키기로 결심했다. 미국에선 대학입시 위주의 주입식 암기식 공부가 아닌 체계적이고 깊이있는 공부를 할 수 있고 어차피 유학을 할 바에야 좀더 빨리가야 성공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유학을 보낸 직후 『도피유학이 아니냐』는 주위의 눈초리 때문에 괴로워 했던 Y씨는 아이들의 학교 성적표를 들고 다니며 내보이기까지 했다. Y씨는 『반드시 유학이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지만 우리나라의 교육이 아이들을 성공적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하는데는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A씨는 공부를 잘 못한 것이,Y씨는 공부를 잘한 것이 자식들을 조기유학보낸 동기이지만 우리의 교육현실에 근본원인이 있는 점은 똑같다. 도피유학은 우리교육의 한계에 부딪쳐 좌절한 것이며 영재유학은 그 한계를 극복하려는 것이다.
2년전 중3 아들을 뉴욕쪽으로 보낸 K씨도 『대학문제 때문에 모험을 하기로 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K씨는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는 풍토에서 고교졸업생의 4분의1 정도만 대학에 들어가는 뻔한 현실을 알면서 아들을 그냥 둘 수 없었다』며 『도피유학이라고 매도하지만 나머지 아이들을 감당할 수 있는 대안이 있느냐』고 항변했다.
영국에서 3년간 살았던 공무원 B모씨는 『공무원 신분이라 불법으로는 못 보내지만 공식적으로 허가만 나면 언제든 아이를 내보내겠다』고 말했다. 현재 고교 1학년인 B씨의 아들은 전교 1·2등을 다투지만 국민학교 3년을 영국에서 보내고 돌아온 뒤 기회만 있으면 다시 보내달라고 조르고 있다.
과학자가 꿈인 아들은 『실험도 안하고 무조건 공식만 외게 하는 이런 과학교육이 어디 있느냐』며 뛰어나게 공부를 잘했던 영국시절을 그리워한다.
조기유학 얘기만 나오면 흥분하며 반대하는 많은 교포들도 무조건적인 주입식교육과 4지선다,입시전쟁,과외열풍 등 한국교육의 문제점을 잘 아는 탓인지 유학생들을 가리켜 『한국에서 내몰렸다』는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
미국 동부의 모대학 교수인 P씨는 『예나 지금이나 대학을 가야한다는 의식의 변화는 없는데다 「데모를 막아야 한다」 「일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대학문을 좁게 만든 정책이 유지돼온 현실에서 학부모들의 불가피한 선택이 조기유학으로 나타나는 것』이라며 『영어가 세계를 지배하고 미국이 전인교육에 충실하다는 기대감도 없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도피유학이든 영재유학이든 중·고생 자녀를 둔 학부모치고 유학을 생각해보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왜 내보내려고 하는가. 우리 교육은 이 물음의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손태규기자>손태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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