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앞서 미 제안 수용불가 노려/“합리·유연” 라빈내각 은근히 희망/부시 재선위해 회담성사 부담… 실현의문미국이 본격적으로 「이스라엘 길들이기」에 나섬에 따라 양국관계가 심상치 않은 양상으로 냉각되고 있다.
제임스 베이커 미 국무부 장관은 24일 하원 세출소위원회에 출석해 이스라엘이 요르단강 서안(웨스트뱅크) 가자지구 등 점령지내 유대인정착촌 건설을 중단치 않을 경우 미국은 1백억달러 규모의 차관보증을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제4차 중동평화회의 개막과 때맞춰 이뤄진 베이커 장관의 이날 발언은 특히 이스라엘의 최근 국내 정치상황과 맞물려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오는 6월23일 총선을 앞두고 있는 이츠하크 샤미르 이스라엘 총리내각은 그동안 국내 보수파를 의식해 미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점령지내 유대인정착촌 건설을 강행해 왔다. 그러면서도 비용 충당을 위해 미 재무부와 1백억달러의 장기상업차관 보증제공 협상을 벌여왔다.
그러나 이번 베이커 장관의 단호한 입장표명에 따라 샤미르 총리는 정착촌 건설과 차관보증 가운데 하나를 택해야 하는 입장이다. 문제는 샤미르 총리가 둘중 어느 것도 버릴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있다는 점이다.
샤미르 총리가 이끄는 리쿠드당은 현재 당내 보수파 뿐만 아니라 제1야당인 노동당으로부터도 강한 도전을 받고 있다. 노동당은 최근 이츠하크 라빈 전 총리를 새 당수로 추대해 총선체제를 정비한후 정착촌 건설과 관련한 샤미르내각의 강경입장을 집중공격하고 있다.
노동당의 새 당수인 라빈 전 총리는 웨스트뱅크 가자지구 등 점령지역내 정착촌 건설문제에 있어 샤미르 총리보다 합리적이고 유연한 입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때문에 미 행정부는 다루기 힘든 샤미르 총리보다는 라빈 전 총리가 오는 「6·23」 총선에서 승리해 집권하기를 내심 원하고 있으며 이러한 희망이 이번 베이커 장관의 대 이스라엘 강경발언속에 담겨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관측통들은 샤미르 총리가 정착촌과 차관중 양자택일하라는 베이커 장관의 요구를 수락하기 힘들 것으로 본다. 정착촌건설 중단요구를 받아들일 경우 주요 지지기반인 보수파의 반발을 받게 되고 차관보증을 포기할 경우엔 경기침체를 우려하는 중도보수세력의 외면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때 미 행정부는 이미 샤미르 총리가 이끄는 이스라엘 강경내각과 결별하기로 방침을 정한게 아니냐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이 전례없이 강경한 입장을 보임에 따라 이스라엘측도 긴장하고 있다. 이스라엘 언론들은 『미 정부가 정착촌 건설문제를 차관보증과 연계시킴으로써 오는 6월 총선을 앞두고 노동당의 라빈 당수를 밀고 있다』고 논평하고 있다. 이 와중에서도 샤미르 총리는 여전히 『1백억달러 차관제공은 중동평화회의와 연계시킬 수 없는 인도적 차원의 문제』라고 강조하면서 미 행정부와의 타협가능성을 배제하고 있다.
일각에선 샤미르 총리가 이처럼 꼿꼿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자신 못지않게 곤경에 처해있는 부시 미 행정부의 약점을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즉 경제문제로 몰리고 있는 부시가 대통령에 재선되기 위해서는 중동평화회의 타결 등 외교적 성과를 부각시킬 필요가 있는데 그 관건은 현재로선 샤미르가 쥐고 있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베이커 장관의 발언을 통해 미 행정부가 내민 대이스라엘 강경카드가 제대로 먹혀들지는 더 두고봐야 할 것같다.<김현수기자>김현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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