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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회담」서 유리한 고지노려/이,레바논 침공과 철수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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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회담」서 유리한 고지노려/이,레바논 침공과 철수배경

입력
1992.0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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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완수”·국내불만 일단무마/걸프전후 시리아부상도 제동회교원리주의 단체인 헤즈볼라의 지도자 압바스 무사위의 폭사로 촉발된 레바논 사태가 또한차례 중동전쟁으로 비화될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다.

무장헬기와 탱크의 지원을 받으며 20일 하오 레바논 국경을 침범한후 시리아군이 포진중인 베카계곡쪽으로 북상하던 이스라엘군은 21일 돌연 철수를 시작했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의 카튜사 로켓포기지를 소탕하는 당초의 군사작전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에 철군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스라엘군의 철수는 중동평화회의를 후원하고 있는 미국과 국제여론의 압력에 밀린 결과라고 볼수 있다.

이로써 레바논은 이스라엘군과 시리아군이 전선에서 격돌하고 회교 및 기독교 무장세력들이 곳곳에서 충돌하는 전후방없는 처절한 전쟁의 불길을 일단 피한 셈이다. 하지만 세계의 화약고인 중동,그중에서도 뇌관에 해당하는 레바논에서 또다시 전면전이 발발할 위험성은 여전히 잠복해있다.

16년간에 걸친 내전의 참화에서 벗어난지 1년도 안돼 또한번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뻔했던 레바논의 역사배경이 이런 우려를 뒷받침한다.

레바논은 현재 중동의 군사강대국인 시리아와 이스라엘의 패권각축장이라고 할수 있다. 이번 사태도 직접적으로는 지난 16일 헤즈볼라 지도자 무사위가 이스라엘 공습으로 사망한데서 비롯됐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대립에서 찾아야 한다. 레바논을 둘러싼 두나라의 첨예한 대립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레바논의 국가탄생 배경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레바논은 원래 시리아 영토였다. 그러나 1926년 시리아를 신탁통치하던 프랑스가 현재의 레바논을 분리시켜 기독교도가 주도하는 자치공화국을 세웠다. 이런 이유로 레바논은 완전독립한 46년말 이후부터 친서방적인 기독교도와 아랍민족주의 색채를 띤 회교도간의 내분에 휩싸였다.

레바논 내분은 제3차 중동전쟁이후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대거 레바논에 들어와 「국가속의 국가」로 세력을 형성함에 따라 복잡한 양상으로 악화됐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가 레바논남부에 거점을 확보한 68년 이후부터 이스라엘이 빈번하게 레바논 영토에 대규모 공격을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뒤 레바논은 이스라엘과 PLO,이스라엘과 시리아의 지원을 각양각색의 무장세력들이 치열한 전투와 처참한 민간인 학살을 자행하는 본격적인 내란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이 와중에서 줄곧 레바논에 대한 영토권을 주장해온 시리아는 76년 아랍평화 유지권의 일원으로 레바논에 진주한후 지금까지 3만5천여명의 병력을 주둔시키면서 사실상 레바논 영토 3분의 2를 장악하고 있다.

반면 이스라엘은 78년 3월 팔레스타인 게릴라의 테러공격을 응징한다는 명분으로 레바논 영토를 공격해 총넓이 8백50㎢ 정도의 남부지역을 점령한후 이른바 「안전지대」를 설정했다. 이스라엘은 1천여명의 병력으로 하여금 이 지역을 감시케하고 경제적인 투자를 계속하면서 지지세력을 배양하는 등 이 지역을 사실상 통치해왔다.

레바논을 둘러싼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이같은 세력다툼은 지난해 7월 시리아의 지원을 받은 레바논 정부군이 4일간의 치열한 접전끝에 레바논 남부지역의 PLO게릴라를 축출하면서 결정적인 변화의 계기를 맞았다. 걸프전후 이라크를 누르고 중동의 강자로 부상한 시리아는 레바논내 PLO의 무장해제와 함께 주권국가 정부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 레바논정부를 앞세워 레바논주둔 이스라엘군의 철수를 강력히 촉구하기 시작했다. 또 걸프전후 시리아와 「밀월관계」에 들어간 미국도 이스라엘에 대해 시리아로부터 빼앗은 골란고원의 반환과 레바논 남부로부터의 철군압력을 가하게 됐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시리아가 레바논으로부터 완전히 손을 뗄때까지 안전지대를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또 이스라엘은 레바논정부와 시리아군이 90년 10월 친이스라엘세력인 미셸아운 장군의 기독교민병대를 분쇄하면서 반이스라엘세력이자 친이란계 회교세력인 헤즈볼라파의 군사력 유지를 허용한 점을 거듭 비난해왔다.

따라서 일부 관측통들은 이스라엘이 이번에 헤즈볼라의 지도자 무사위를 암살해 헤즈볼라파의 카튜사로켓포 공격을 유발한 것을 하나의 의도적인 전략으로 간주하고 있다. 즉 헤즈볼라와 같은 반이스라엘세력이 시리아의 비호아래 레바논내에 남아있는한 이스라엘군의 레바논철수는 「안보적인 이유」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계획된 무력시위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또 대내적으로 극우보수파의 정치공세가 강화돼 궁지에 몰려있는 샤미르 총리 내각이 국내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대아랍강경책을 사용했다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현재 중동정세의 대세가 이스라엘에 대해 평화의 대가로 점령지를 양보토록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카드는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다. 미국의 군사·경제적 지원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이스라엘이 중동평화회의를 후원하고 있는 미국과의 결별을 감수하면서까지 독자적인 군사행동을 계속할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이스라엘의 레바논침공은 오는 24일 열릴 예정인 중동평화회의 제3차 워싱턴 쌍무협상테이블에서 이스라엘의 불안정한 안보문제를 새삼 부각시키고 아울러 국내 강경파의 공세도 피하려는 이중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김현수기자>

◎레바논­이스라엘 안전지대란/85년 설치… 국경따라 8백50㎢/유엔군 6천명… 국제인정안돼

이스라엘군이 20일 회교과격파를 응징하는 미명하에 전격 돌파한 레바논 남단의 「안전지대」는 지난 75년 당시만 하더라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세력이 장악하던 회교세력권에 속했으나 76년 이스라엘의 적극적인 레바논 내전개입 이후에는 줄곧 이스라엘의 영향권아래 놓여있던 곳이다.

이스라엘은 지난 75년 레바논내전이 발발하자마자 레바논­이스라엘 국경지역의 안전지대를 점령했으며 78년에는 기존의 안전지대 범위를 레바논쪽으로 40㎞까지 강제 확장했다.

이어 더이상의 사태악화를 막기위해 6천명 안팎의 유엔평화유지군이 안전지대에 파견되는 등 불리한 여건이 계속 조성되자 이스라엘은 85년 3월 레바논에서 발을 빼면서 8백50㎢에 이르는 새로운 안전지대를 완충지대로 설치했다.

레바논­이스라엘국경을 따라 설치된 안전지대는 현재 국제법상의 성격규정이 유명무실한 곳이다. 유엔도 이를 인정치 않고 있다.<장현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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