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심부름에 툭하면 주먹질/“영어만 사용한다” 트집 잡기도/이해못하는 미국인들 비웃음사서울대를 목표로 할 만큼 공부를 잘하던 C모군(17)은 지난해 하버드대를 가겠다는 다부진 의욕을 가지고 보스턴 근교의 사립학교로 유학을 왔다. 이 학교는 1년에 학비가 2만3천여달러나 드는 기숙사 학교. 그러나 불과 몇달 가지않아 C군은 『이 학교에서는 하버드를 갈 수 없으니 학교를 옮겨달라』고 한국의 부모에게 호소했다.
놀라 급히 미국으로 건너온 부모에게 C군은 『한국 학생 선배들이 무서워 공부를 못하겠다』고 털어놓았다. C군은 『선배들이 담배 심부름까지 시키고 말을 안들으면 마구 때린다』고 말했다. 선배들을 깎듯하게 「형님」이라고 부르게 하고 온갖 기합을 주는 등 20여명의 한국학생이 마치 불량배 조직처럼 돼있어 도무지 빠져나올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고교에선 흔히 있는 일이었지만 자유스런 미국의 학교생활을 기대했던 C군은 충격을 받아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없었다.
결국 C군의 부모는 아는 교포의 도움을 얻어 8천달러의 기부금을 내고 아들을 공립학교로 전학시켰다.
미국의 학교에서는 선·후배 구별이 엄격하지 않다. 물론 상급생들이 기합을 주거나 때리는 일도 거의 없다. 그러나 미국의 교육환경이 그럴 수 없이 좋다고 말하는 한국 유학생들이 이런 것은 배우질 않는다. 일부학교이긴 하지만 유학생이 수십명씩 몰려있는 기숙사 학교에서의 기합·폭력은 심각한 상황이다.
보스턴 근교 W고교의 전교생 80명중 한국유학생은 30여명. L모군(16)은 처음 이 학교에 왔을때 선배들로부터 하루가 멀다하고 두들겨 맞았다. 21세짜리 학생도 있는 이 학교 한국 학생들의 규율은 매우 엄했다. L군은 다른 학교에 다니는 친구에게 『스포츠 주니어 국가대표 출신인 어느 졸업생은 지금도 주말이면 가끔씩 학교에 찾아와 후배들을 모아놓고 때린다』고 하소연했다.
지난해 여름방학때 한국학생이 40여명인 코네티컷주의 N고교 여름학교를 다녔던 K모군(18)은 『한국아이들이 흑인들도 다 잡고 있다고 자랑하더라』고 말했다. K군도 여름학교에 온 한국학생 3명과 함께 기숙사 부근 숲속으로 끌려가 이 학교 학생 15명으로부터 집단구타를 당했다.
영어의 어려움 때문에 미국 학생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한국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끼리끼리 뭉쳐 다니는데 미국학생들의 좋은 점은 제쳐두고 한국에서의 악습을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다. 유학생들이 영어만 쓰는 교포학생들을 때려주는 사례도 흔하다.
온갖 문제점이 드러나 이제는 폐교되다시피 한 LA의 W고교는 한국인이 세운 학교로 전교생 20여명 모두 한국 유학생이었다.
지난해 5월 유학왔던 S모군(16)은 그중 막내였다. 여기서도 한국학생들간의 기합·구타는 대단했다. S군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선배들이 벌로 하는 변소청소를 도맡아 하며 온갖 심부름을 다했다. 툭하면 선배들이 주먹으로 때리기 일쑤였고 어떤 때는 밤중에 깨워 침대에 낀 쇠파이프로 패기도 했다.
S군은 부모에게 이 사실을 숨겨왔으나 지난해 10월 주말에 S군을 집으로 데리고 온 한 친지가 얼굴이 퉁퉁 부어있고 가슴에 손을 대지 못하게 하는 것을 이상히 여겨 캐묻는 바람에 모든 사실을 이야기하게 됐다. 연락을 받고 미국에온 아버지는 학생관리를 소홀히 했다며 학교당국을 관할경찰서에 고발했다.
경찰과 LA시 검찰이 조사끝에 증거불충분 등을 이유로 유야무야 됐지만 이 사건이 교포사회에 준 충격은 컸다. S군의 아버지는 『아이의 머리에도 군데군데 머리카락이 뽑힌 자국이 있었다』며 『학생들도 문제지만 오히려 우리 아이가 잘못했다며 때린 한국인 사감이나 「미국에서 추방하겠다」고 협박한 한국인 이사장이야말로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분개하고 있다.
중학 2학년때 온 P군(16)은 평소 한국학생들을 잘 놀리던 흑인학생 1명을 흠씬 두들겨 패 퇴학을 당하고 말았다. P군은 『인종차별을 하는 것같아 참을 수 없었다』고 말했지만 미국 학교에서 폭력에 대한 규제는 매우 엄격하다. P군은 지금 다니는 M고교로 옮길 때도 폭력사실 때문에 무척 어려움을 겪었다.
미국고교에서 카운슬러로 일하는 이모씨(여)는 『한국유학생들이 40∼70여명씩 있는 학교에는 선후배간에 규율이 아주 엄한 곳이 많다』며 『이제는 미국교사들도 한국학생들이 서로 잘 때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수업시간중 미국학생들에게 「너희들 맞아 볼래」라는 농담까지 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유학생들이 한국에서 안고온 문제점을 규제가 없는 곳에서 마음대로 드러내 확대재생산하고 있다』며 『학교마다 똑같이 기합·구타 문제가 일어나니 고치기가 힘들다는 생각마저 든다』고 걱정했다.<보스턴 la="손태규특파원">보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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