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일선택 집권당 프리미엄/비용은 엄격제한… 유권자 접촉기회 많아/영국【런던=원인성특파원】 국회의원 선거일자가 4월9일께로 굳어져감에 따라 영국에도 총선바람이 일고 있다. 나날이 늘어가는 실업자,회생할 줄 모르는 경제만 보면 우리보다 별로 나을게 없는 나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정치와 선거로 화제가 돌아가면 민주주의의 본산임을 자처할만한 선진국의 풍모를 갖추고 있음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우리네 풍토와 우선 대비되는 것은 선거와 돈의 관계이다. 임기 5년인 6백50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총선거가 4년 남짓마다 실시되지만 이곳에서 선거때문에 인플레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선거구마다 적게써도 몇억씩 든다는 우리와는 달리 선거비용이 엄격하게 제한돼 있고 이를 위반할 수 없도록 경제사회구조가 정착돼 있기 때문이다.
후보자 한 사람이 선거비용으로 쓸 수 있는 돈은 기본비용이 4천1백44파운드에 유권자 1인당 3.5펜스(농촌지역은 4.7펜스)이다. 잉글랜드지역의 선거구당 평균 유권자가 7만명 가량이니 총 비용은 6천6백파운드(약 9백만원) 정도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와 달리 이 법정비용이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고 이를 어긴 것으로 판결되면 즉시 의원직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법정선거비용이 실제로 준수되도록 하는 가장 큰 요인은 금융실명제이다. 모든 예금과 수표거래가 실명으로만 이루어지기 때문에 돈의 행방을 감추고 마구 뿌리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더욱 흥미있는 것은 영국의 공탁금 규모이다. 후보자의 무분별한 난립을 막기위해 있다는 이 공탁금은 5% 미만의 득표를 했을 경우 국고에 환수되는데 금액은 5백파운드(약 70만원)에 불과하다. 5백파운드를 큰 돈으로 여길 정도로 후보자의 선거비용은 알뜰하게 쓰여진다.
금권선거로 전락할 여지가 적기 때문인지 후보자와 유권자가 접할 수 있는 기회는 상당히 폭넓게 허용된다. 유세나 시장방문 등은 물론이고 지지자들의 모임참석과 호별방문도 할 수 있다.
선거일의 선택권한은 집권당에 대한 프리미엄으로 간주돼 총리가 전적으로 갖고있다. 다소 의아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정권교체가 원활하게 이뤄지고 선거비용이 많이 들지 않기때문에 큰 반론은 제기되지 않는다. 투표일은 목요일로 하는게 관례로 돼있다. 물론 공휴일은 아니며 상오7시부터 밤10시까지 투표를 실시해 직장인들도 퇴근후 투표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영국의 투표율은 선진국중에서는 상당히 높은 편으로 지난 87년 선거때는 74.6%를 기록했다.
◎절대과반수 획득해야만 당선/대선결선일 5월 두번째 일요일 관례화/프랑스
【파리=김영환특파원】 프랑스의 모든 선거는 46년 10월에 제정된 선거법에 의해 반드시 일요일에 치르기로 명문화돼 있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축제인 이상 당연히 일요일에 실시한다는 것이 프랑스인들의 멘털리티이기 때문이다.
또한 대통령,국민의회(하원)의원,시장 등 대부분의 각급 선거가 절대과반수 획득을 당선의 요건으로 하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후보가 난립하는 프랑스에선 2차 결선투표가 왕왕 불가피하다.
통상 대통령선거의 결선투표는 1차 투표후 2주일 뒤,기타선거의 경우는 1주일 뒤에 실시한다.
7년제인 대통령선거일은 현 대통령의 임기만료 20∼35일 전에 실시하되 선거일은 내각이 결정하게 돼있지만 우파집권으로 치른 74년과 81년의 선거나 좌파집권후의 88년 선거가 그러했듯이 대통령선거의 결선일은 5월 두번째 일요일로 관례화돼 있다. 따라서 이변이 없는한 오는 95년의 대선도 이런 관례를 깨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총선은 임기만료 60일 이내에 실시하는데 93년 총선도 역시 5월로 예정돼 있으며 내각이 의회와 협의해 결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도 당리당략으로 인해 선거일자를 줄다리기하는 추태는 없다. 프랑스의 정치권은 선거의 결과가 투표일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동안의 정치행위로 심판받는 것임을 터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례화된 선거일정 덕분인지는 몰라도 프랑스의 투표율은 대체로 높은 편이다.
대통령선거의 경우,드골미테랑대결의 65년엔 1차 84.8% 2차 84.4%였다. 드골이 하야한 뒤 69년 퐁피두포헤르로카르대결은 1차 77.6% 2차 66.8%를 기록했다.
미테랑과 데스텡이 맞붙은 74년 대선의 경우 1차 투표율이 84.2%로 미테랑이 43.2%를 얻어 32.6%의 데스텡을 앞질렀다. 결선투표율은 사회당 집권 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고조,87.3%로 상승했지만 미테랑은 49.2%의 득표율을 얻는데 그쳐 50.8%의 데스텡에 역전패했다.
81년 미테랑데스텡시라크 대결은 1차 81.5%,2차 84.4%의 투표율에 데스텡 28% 미테랑 26% 시라크 18%의 득표율을 기록했고 2차에선 미테랑이 52%를 얻어 역전승,74년의 패배를 설욕했다.
이처럼 대통령선거의 2차 결선투표는 2차례 역전의 결과를 기록하는 등 언제나 국민의 정치관심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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