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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주」의 딸들(정경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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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주」의 딸들(정경희칼럼)

입력
1992.0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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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대의 빚더미위에 앉아있는 미국이지만,경쟁상대가 없는 「세계 제1」의 수출품이 몇가지 있다. 담배와 항공기,그리고 대중음악이다. 미국의 대중음악 시장은 한해에 대충 2백억달러 규모. 이중에서 70%가 해외에서 거둬들이는 돈이다.미국의 대중음악,그중에서도 요란한 록음악은 한때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공산권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악마」 취급을 받았었다. 모스크바에서 록음악이 허용된 것은 고르바초프집권 이후 86년 들어서의 일이었다. 이제 미국의 록음악은 동유럽이라는 마지막 금단의 땅까지 정복했다.

그러나 록음악은 본바닥 미국에서도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토니 랜덜이라는 사람은 말한다. 『록음악은 아이들을 위해 쓰인 것이다』고. 한때 미국 상원에서는 청문회까지 열려,랠프 나더라는 사람은 록음악이 청소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고있다고 비판했다. 워싱턴의 여성단체들도 록음악이 아이들을 썩게하고 있다고 반대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미국의 대중음악은 록음악만이 아니다. 독특한 서민의 꿈을 그린 웨스턴이나 컨트리,그리고 아름다운 발라드는 세계를 정복한 미국문화의 위대한 창작물이다.

지난 17일 서울 잠실의 올림픽 체조경기장을 어처구니없는 수라장으로 만든 팝그룹 「뉴키즈 온 더 블록」은 지금 미국을 휩쓸고 있는 슈퍼스타의 하나다. 지난해 벌어들인 돈이 미국 연예계 1위로 자그마치 8백억원 규모. 한달 평균 66억원의 돈벼락을 맞고 있다는 계산이다.

양순한줄로만 알았던 이 땅의 딸들이 이들 5인조 팝그룹을 보는 순간 기성과 괴성을 지르고,머리가 돈 것처럼 밀려나가 비극이 터졌다.

도대체 얌전한 공부벌레들이 눈 깜짝하는 사이에 미쳐버리다니…. 세상의 부모와 어른들이 지금 어이없는 10대 딸들의 광란극에 할 말을 잊은 꼴이다.

하지만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다. 세계에 「폭탄주」를 마시는 민족은 이 나라밖에 없다. 자기는 폭탄주에 인사불성이 되면서,기타들고 몸을 흔들어대는 가수에 인사불성이 된걸 나쁘다고 할수는 없을 것이다.

「투기」라면 인사불성이 되는 엄마·아빠가,「외제」라면 미쳐버리는 어른들이 미국에서 수입해온 팝그룹에 미쳐버린 아이들을 보고 놀라는게 오히려 이상하다. 전 국토가 입시학원이 돼버린 이제 와서 교육 부재를 한탄하는 것도 멋쩍다.

괴성을 지르다 실신한 아이들의 모습은 바로 어른들 자신의 모습이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놀라고 있을 뿐이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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