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언 이주일 탄압코미디언 이주일을 탄압함으로써 정주영 바람을 막아보겠다고 했다면 그 발상은 순진하고 참으로 한심하다. 오히려 살살 살아오르려는 불길위에 휘발유를 끼얹어준 꼴이 되었다. 지난 주말 도하 각 신문 1면에 대문짝 같이 난 통일국민당의 「노 정권은 정치탄압을 중지하라」는 광고는 이주일 일석을 잃는대신 10석을 얻는 정치효과를 얻게 한 것이 아닐까? 정씨를 정치초년병이고 약점이 많은 재벌총수로 보고 유치한 공작을 편다면 뭘 모르고 있다는 핀잔밖에 돌아갈게 없다. 짧은 정치활동 기간중에 보인것만 보아도 정씨는 이 나라의 어느 정치지도자에게도 뒤지지 않는 정치감각·정치선전·상징조작 능력·용전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이 시대의 여러갈래 내리막 흐름이 겹친 분기점을 포착해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타이밍을 잡은 통찰력만 해도 보통이 아닌 것이다. 그는 우선 정국 장악력이 약해지는 대통령의 후반기 누수현상이 본격화되는 시점을 택해 정치전업을 선언했다. 방해공작의 한계를 정확하게 읽고 있는 증거이다. 그가 예리하게 겨냥한 두번째 내리막 흐름은 『TK는 이제 그만』이라는 다수국민의 염증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기회가 있을때마다 『TK가 5년더 집권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외치고 있지 않은가. 『육사장군출신은 이제그만』이라는 여론도 큰 흐름임을 놓치지 않고 있다. 그가 자신있게 노린 네번째 대세는 두 김씨의 퇴조흐름일듯 하다. 정치지도자라는게 마치 생선과도 같아서 너무 오래 노출되면 선도가 뚝떨어질 수가 있다. 정씨는 상대적으로 자신이 더 싱싱하다는 점을 입증시키고 싶을 것이다. 그가 영·호남의 지역감정 싸움에 넌더리가 나 있는 중부권과 이북 실향민의 정서를 누구보다도 잘 이용할 만큼 노회하고 계산적임도 빼놓을 수가 없다. 그렇게 볼때 현 정치판은 그에게 놓칠 수 없는 1백년만의 호기로 비춰짐직하다.
어디 그 뿐인가. 경제에서 실패한 6공의 무능에서 그는 반사이익까지 챙기고 있다. 기성 정치지도자들은 벅찬문제에 부딪치면 목표자체를 바꿔 빠져나간다. 그러나 정씨는 달랐다. 수단방법은 어떠했든간에 문제와 정면으로 부딪쳐 「현대」를 세계적 기업으로 일구어낸 인물. 경제난국이 목말라 구하고 있는 총체적 사고력 행동력 추진력을 겸비했다. 그는 전국적인 지명도와 대중성에서도 당대 최고수준이다. 세금중과,이주일 출국 등으로 이어지는 정치탄압과 현대그룹의 조직,수십억원어치의 쌀뿌리기로해서 제1야당보다도 더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이점까지 챙기고 있다. 행진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남에게 손을 벌리는 정치자금의 흑막없이 순전히 자기돈으로 정치를 한다는 유례없는 기록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기택씨의 전국구행을 개패듯한 깐깐한 언론이 정씨의 정계데뷔를 덜 비판하고 있는 것은 예선은 거치지 않고 본선에 나서도 된다는 그의 저력을 종합평가한 때문인지도 모른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
그러나,산이 높으면 골짜기가 깊고 덩치가 크면 그림자도 그만큼 크다. 정씨의 장점과 긍정적인 면이 많다면 단점과 부정적인 면도 그만큼 많아진다. 정씨의 속셈은 국회에서 교두보를 확보한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의 야심이 실현된다고 가정해볼때 79세에 취임해 84세까지 집권하는 셈이 된다. 당연히 고령이 문제가 된다. 타고난 장골이며 초인적인 정력가니까 「연령장애」를 무난히 극복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을까. 비행사가 음속을 돌파하듯 인간도 「연령장애」를 넘기면 무한히 살 수 있다고 67세의 드골에게 말해준 사람은 82세의 아데나워였다. 그러나 두사람 모두 나이의 벽을 넘지 못했다. 고령의 한계에서 인간은 예외가 없는 것이다.
일본사람들은 혼다 오토바이를 끊임없이 개선해 세계시장을 석권한 혼다 소이치로(본전종일랑)를 미국의 자동차왕 헨리 포드보다 위로 친다. 포드가 발명가로서는 혼다보다 훌륭하나 후반생애가 엉망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혼다는 67세때 회사를 자식에게가 아니라 종업원들에게 넘기고 은퇴하는 결단을 내린 위인의 품격을 보였으나 포드는 정치에 손을 대고 사업에선 폭군으로 돌변해 회사를 곤두박질 시켰던 대조적 노후를 살았다. 어떻게 보면 정씨는 포드보다도 상황이 더 비관적이다. 방대한 현대그룹의 임직원이 음으로 양으로 선거운동에 동원되는 일이 예사롭지 않고 그룹 경쟁력이 정부의 핍박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든지,정부의 권위에 도전한데 대한 탄압을 받게되리라는 것 등이 국민의 기업인 현대를 몰락의 길로 몰고 갈 수도 있는 것이다.
○갈수록 태산인 한국정치
정씨는 지도자에게 있어서의 생명인 도덕성,정직성,순수성에서 문제가 있는 반생을 살아온게 사실이다. 구국차원 운운하지만 정치에 나서는 대의명분도 약하다. 새정치를 표방하지만 특정인 중심의 권위주의적 붕당형태,낙천자나 낙오자 등 정치철새를 끌어모은 잡식성을 못벗어난데다가 이념,철학,비전도 빈약하기 짝이 없다. 결국 「돈으로 말한다」는 재벌당의 테두리를 벗어나기 어려우리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기업가는 돈을 버는 일이라면 악마와도 손을 잡는다는 말이있다. 재벌총수가 권력까지 갖는다는 것은 호랑이에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 될지도 모른다. 그것이 무서운 일이기에 정경유착을 일찍이 모두 금기시해온게 아닐까. 그는 정경유착을 해소한다고 하지만 잘못된 표현이다. 정경일체가 되는 것에 다름 아니다. 현대당 다음에 삼성당,대우당이냐는 비아냥이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길게볼때 재벌총수의 권력게임 참가는 부정적인 측면이 강하다. 그러나 현실정치판에선 아랑곳하지 않고 바람이 불고 있다. 한국의 정치는 갈수록 태산이다.<본사주필>본사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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