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 로이터=연합】 북한이 김일성주석으로부터 가까운 장래에 권력을 승계받을 것으로 점쳐지고 있는 김정일은 일부의 예상대로 권좌에 오를 경우,자신의 최측근중의 한사람으로 서방세계에서도 상당한 지명도를 갖고 있는 김용순(57)으로 하여금 북한 대외정책을 총괄케할 것이라고 대북문제 전문가들이 17일 전망했다.대다수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북한노동당 국제부장인 김용순이 김일성주석은 물론,김정일로부터도 두터운 신임을 얻고 있는데다 근년들어 북한의 대서방접촉 창구역할을 도맡아 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김정일 시대에는 그가 명실상부한 북한대외정책의 총수로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들 전문가들은 또 김정일의 권력승계 문제에 대해 김정일이 작년 12월 김 주석으로부터 북한최고권력을 뒷받침해주는 최대의 「버팀목」이라고 할 수 있는 군최고사령관직을 넘겨받은데 이어 최근 들어서는 일상적인 당정업무까지 책임지고 있다는 김 주석의 발언에 주목하면서 이같은 사실을 감안할때 김정일이 김 주석의 80회 생일이 되는 오는 4월15일을 전후해 김 주석의 뒤를 이어 권좌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한편 인민무력부장 오진우와 더불어 김정일의 「오른팔」로 알려지고 있는 김용순은 지난달 뉴욕에서 있었던 한국전쟁 이래 최초의 고위급 대미접촉과 일북한관계 정상화 추진과정에서 보여준 솜씨에서도 드러나듯 대외정책 수행에 있어 끈질기고 유연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수년동안 이탈리아·프랑스·일본 등 북한과 외교관계가 없는 서방국가들을 잇따라 방문한 사실들이 말해주듯 김용순은 김정일과 호흡을 맞춰가며 구 소련 및 동구공산권 붕괴이후 북한의 최대 당면과제로 대두된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고 서방세계의 대북한무역 및 투자유인업무를 전담해왔다는게 북한문제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용순은 지난 70∼72년 이집트 주재 북한대사를 역임하고 73년 북한대외문화 관계위원회 부위원장이 된뒤 특히 지난 80년 김정일이 북한권력의 핵심인 노동당의 제2인자로 부상한 것과 때를 같이해 당중앙 위원이 됨으로써 권력의 전면에 나서게 됐다.
지난 48년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54년에는 모스크바 대학에 유학하는 등 북한의 엘리트 정통외교관 코스를 밟아온 김은 88년 노동당 국제국장에 이어 지난 90년에는 당대외 담당부서로 승진하는 등 출세가 도를 달려왔다.
김용순이 김일성의 전처이자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의 남동생이라는 소문도 있으나 이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지난달 뉴욕에서 김용순과 만나 북한내 핵시설에 대한 국제사찰 및 폐기문제 등을 논의했던 아놀드 캔터 미 국무부 정무담당차관은 회담이 끝난뒤 기자들에게 『이 회담이 정중하고 솔직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으며 회담 내용도 유익했다』고 밝혔으며 북한관영 조선중앙통신도 『회담이 개방적이고 건설적인 분위기 속에서 만족스럽게 이루어졌다』고 말해 김이 능숙한 협상솜씨를 갖고 있음을 간접 시사하기도 했다.
김의 이같은 수완은 지난 90년 9월 일본 자민당의 방북대표단 선발대 책임자로 미리 평양을 방문했던 이시이 하지메의원의 설명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김이 북한의 대외정책을 비롯해 제반 국제문제를 총괄하는 실력자라는 얘기를 들었다. 특히 김과 15시간이 넘게 얘기를 나누는 동안 그가 능숙한 외교술과 유창한 언변을 갖고 문제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다루기 힘든 외교관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하지메 의원은 회고했다.
김은 지난 90년 9월 가네마루 신(김환신) 부총재를 단장으로 한 자민당 대표단이 처음으로 평양을 공식방문했을 당시 가네마루를 융숭히 접대,일북한 쌍방이 관계정상화 회담을 시작하자는 합의를 이끌어 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은 양측간의 관계정상화 회담이 현저한 이견으로 진전을 보지 못하자 회담시작 한달뒤인 작년 2월 동경을 방문,당시 가이후 도시키 총리,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 현 총리 등을 비롯한 자민당 지도부와 일련의 회담을 갖고 정지작업을 펴는가 하면 곧이어 중국,말레이시아,호주,뉴질랜드,인도네시아,쿠바 등을 방문해 북한외교의 고립화 탈피를 시도하는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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