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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박람회… 대전엑스포 계기로 본다(화제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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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박람회… 대전엑스포 계기로 본다(화제추적)

입력
1992.0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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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경복궁서… 100만 인파 몰려/전시코스 80리 관람 3일 걸려/연예관의 기생가무 최고 인기… 50일내내 “성황”/일,식민통치 합리화 목적… 종사자 실직 후유증도93년 대전엑스포 준비를 위해 정부는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는 이 박람회가 성공적으로 개최될 경우 관광 교역 등 산업전반의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한제국 시절이던 1893년과 1900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와 파리박람회에 참여했던 우리나라에서 박람회가 처음 열린 것은 63년전인 1929년. 일제에 의해 열린 행사였지만 전국에서 「박람회구경」이 온통 화제였고 경성으로 오는 인파때문에 열차가 연일 붐빌 정도였다.

민속학자 김선풍교수(52·중앙대)가 최근 공개한 사진책자 「조선박람회 기념사진 연예지간」은 조선박람회 모습을 생생히 보여주어 대전엑스포를 앞둔 시점에서 흥미를 끌고 있다.

이 책자는 국판 1백32쪽 분량으로 박람회 기간중 일본인 삼강준개에 의해 일어로 발행된 안내서. 경회루를 화사하게 담은 표지 다음에는 개최장소인 경복궁일대 조감도,박람회에 협찬한 인사들,각 전시장,박람회장에 마련된 연예관에서 공연하는 조선과 일본의 기생사진 등으로 이어진다. 조선무용사진 밑에는 자세한 해설이 붙어있어 국악,무용,민속학연구에 좋은 자료로 평가된다.

조선박람회는 29년 9월12일부터 10월31일까지 50일간 경복궁에서 조선총독부 주최로 열렸다. 내선일체 정책을 추진해온 조선총독부는 일제의 통치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이 행사를 구상,28년 8월 경성의 조선유지 5백30명을 총독부로 불러놓고 박람회 개최를 결의하도록 했다.

개최 명분은 「조선고유의 위대한 문화유산과 일제 통치이후 발전된 조선의 모습을 내외에 알리자」는 것이었다.

총독부는 이를 위해 경성 등 전국에 박람회 협찬회를 조직,거액의 자금을 모았으며 대규모 박람회장 건설을 추진하고,당시 신문에 대대적인 광고를 실어 참여를 유도했다.

민족주의자들의 심한 반발속에 당시로서는 천문학적 액수인 5백만원을 투입,개최한 박람회는 규모나 행사의 다양성에서 보는 사람들의 입을 딱 벌어지게 했다. 박람회장 정문에 들어서서 각 전시관을 둘러보는 거리는 약 80리. 모두 구경을 하려면 족히 사흘이 걸렸다고 한다.

또 조선 각도의 특설관과 대만관 동경관 연예관 등에 출품된 전시물과 공연은 2만건을 넘을 정도였다.

입장료는 소인 15전,대인 30전,일반단체가 20전이었는데 협찬회가 주관했던 연예관과 활동사진관 등은 따로 요금을 받았으므로 모두다 들르려면 3∼4원이 들었다.

볼거리가 없었던 조선인에게 박람회는 최고의 구경거리였다. 개최기간에 전국에서 98만명의 유료입장객이 몰렸고 무료관람자까지 합하면 1백수십만명이 넘었다.

이 때문에 박람회장 주변에서는 인파에 밀려 다치거나 길을 잃고 강도를 당하는 사건과 불이 나는 사고와 혼란이 잇따랐다.

당시 신문은 「박람회를 효과적으로 보는 방법」 등을 소개하거나 박람회 스케치기사를 싣고 관람객들의 행태를 4칸짜리 풍자만화로 꼬집기도 했다.

박람회장의 산업남관과 북관에는 조선의 생산품이 일목요연하게 진열됐고 미관에는 조선쌀이,사회경제관에는 금융기관 등 각종 경제기관이 소개됐다.

각도의 특설관은 고장의 특징을 자랑하는 출품작으로 꾸며졌으며 교육미술공예관,교통관,승마장,육해군관,활동사진관,동물원인 축산관,음식점 구역,어린이놀이터인 어린이나라 등이 운영됐다.

이밖에 외국문물을 소개하는 만몽참고관 동경관 대판관도 개설됐는데 중국옷을 입은 미녀들이 중국차를 따르는 만몽참고관은 대단한 인기였다.

관람객이 가장 많이 몰린 곳은 조선과 일본의 기생들이 가무를 했던 연예관. 1백80명의 일본기생들은 「가시조선십경」을 가무로 만들어 선보였고 노출 심한 서양무용복 차림으로 서양무용을 공연,눈요깃거리를 제공했다.

조선권번 한성권번 경성권번 등에서 나온 조선기생 3백41명도 전통무용과 음악외에 서양무용을 공연했다.

50일간의 박람회는 성황속에 끝났으나 박람회 기간에는 일경의 경비가 삼엄하게 펼쳐져 「불지선인」들이 많이 검거됐고 일제검색도 계속 실시됐다.

후유증도 만만찮아 박람회에서 일한 사무원 8백명이 갈곳이 없어 실직상태가 되거나 대목을 노려 막대한 상품을 들여놓은 종로상인들의 가게엔 「낙엽만 표표」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 박람회는 철도국 전기국 등 교통기관엔 「황금우」였다. 화류계와 요정도 「상엽에 춘풍」을 만난듯이 호황을 누렸다.<김철훈기자>

◎공연된 가무 「조선십경」

일본기생들에 의해 공연된 조선십경은 조선박람회를 축하하기 위해 지어진 가시에 음악을 붙여 가무로 만든 것이다. 경별로 각각 다른 무대를 만들어 공연했는데 조선의 풍경을 소재로 일본인들의 정서를 표출하는 식이었다. 기생들은 일본인 작곡가 간옥좌길이 붙인 곡에 노래와 무용을 곁들였다. 조선십경의 설정은 특정장소의 해와 달,설경,단풍 등 감각적인 미를 추구하고 있다. 일본의 본권번과 신정권번 소속인 기생들은 조선십경을 포함,모두 51차례의 공연을 가졌다.

조선박람회 연예관에서 공연된 조선십경은 다음과 같다.

제1경­부산부두의 일의 출

제2경­조선신궁의 하의 요

제3경­의주 통군정의 원망

제4경­인천 월미도의 소월

제5경­경주 불국사의 회고

제6경­평양 목단대의 환상

제7경­북한산 설의 정경

제8경­조선박람회의 성관

제9경­금강산 홍엽의 추

제10경­경성 창경원의 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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