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에서 동해안을 거슬러 올라가 울진 삼척 강릉을 거쳐 속초 가는 7번 국도는 아름답다.해안의 기기묘묘한 굴곡들,오랜 풍화작용에 씻긴 추상적 조형미의 절벽과 어우러진 바위들,월송정의 소나무숲,한많은 고려 공양왕의 후미진 바닷가의 능,거기 바다로 흘러드는 태백의 맑은 시내들 몇개.
달뜨는 밤길은 더욱 그렇다. 달빛받아 부서지는 겹겹의 파도. 아름다운 여인이 끝없이 하얀 속옷을 벗어내는 듯하다.
그러나 긴긴 해안선 거기 철조망은 차갑게 감겨 있다. 휴전선 1백55마일에만 철조망이 둘러쳐진 것이 아니다. 동해 바닷가 거슬러 오르며 철조망은 부처님의 등창처럼,예수님의 십자가처럼 우리의 등줄기를 서리서리 내려감고 있다.
브란덴부르크의 문을 가로막던 베를린 장벽도 무너지고 발트에서 알래스카,코카서스에서 극해까지의 공산주의 대국 소련도 사라졌지만,1백55마일 비무장 지대는 오히려 남아 우리의 상처를 깊게 하고 있다.
철조망 안쪽에는 조약돌 서너개 포개어 규칙적으로 놓은 곳도 있다. 적이 철조망 뛰어넘다 건드려 떨어뜨리도록 한 것같다. 녹슨 철조망,쥐면 부서져 버리는 허술한 곳도 있다. 쓰임새가 많은 예산이다 보니 새 철조망 구해다 가는 일도 어디 쉽겠는가. 모래밭엔 발자국이 찍히도록 깨끗이 비질해 놓기도 한다. 해안으로 침투한 적의 발자국이 찍히도록 머리를 쓴 것. 원시적 방법이지만,빈약한 예산탓이거니 여기면 웃을 수만은 없다.
그래도 이것은 국방쪽의 일이고,치안을 위한 철조망이 또 있다. 범죄와의 전쟁 이후 계속 늘어났다는 범죄만큼 이곳저곳에 바리케이드가 설치되어 있다.
동해안 서해안 산간지방을 막론하고 여행하다보면 검문을 자주 당한다. 대개의 경우 검문은 절도있고 예의 바르다. 그러나 몹시 오만 불손하고 불친절하기도 해서 뒷맛이 씁쓸한 경우도 없지 않다.
큰 도시의 입구에는 어느 방향에서든지 검문소가 있고 바리케이드가 있다. 적을 막기 위해 뾰족한 말뚝으로 울타리를 만들어 세우거나 흙과 수레 등으로 임시 쌓은 곳을 방책 또는 바리케이드라 한다. 국어사전식 표현이다.
도시로 돌격해 들어오는 적을 막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놓촌에서 도시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일단 가상의 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검문이 끝날 때까지는 그렇다. 검문이 끝남과 동시에 혐의가 풀리기 때문에 문제될 것은 없어 보인다. 검문은 물론,차량의 경우에만 해당된다. 도보자에게 검문은 거의 없는 편이다.
그리고 「일단정지」라는 빨간글씨가 늘 선명해 보이는 게시판이 있다. 너나 할것없이 거기 멈추라는 것이다. 왜 멈추라는 것인지 설명은 없다. 누구도 그것을 말해주지 않는다. 그것뿐이 아니다. 고속도로 또는 고속화도로의 입구에도 바리케이드가 일년 열두달 설치되어 있는 곳도 있다. 4차선으로 원활히 소통되던 도로가 검문소의 바리케이드 때문에 갑가지 2차선으로 줄면서 차들이 끼어들어야 한다. 바쁜 출퇴근 시간에 검문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리케이드는 여전히 설치되어 교통체증을 유발한다. 을씨년스럽고 위압적인 모습은 놔두고라도 바쁘고 무관심해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모두 무심의 달인들이다.
간첩출몰,휴악범의 탈출 등 시민이 언제 어느 곳에서 피해를 입을지 모르는 상황이 발생해서 예상지역을 일정기간 바리케이드를 치고 검문검색을 실시한다면 또 모른다. 교통이 몹시 빈번하고 여객과 화물의 통행량이 많은 산업도로에 바리케이드를 설치,습관적 검문을 해대는 행위가 과연 합리적일까. 한사람의 도둑을 잡기 위해 열사람의 무고한 시민을 불편하게 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행위에 대해 상대방의 이해를 구하는 것중 설명보다 더 나은 것은 없다. 경찰의 업무라고 예외는 아니다. 언제 어떻게 걸려들지 모르는 범죄자를 위해 무단으로 도로를 점거할 권리가 어느 누구에게도 주어져 있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신분증의 제시를 요구할 때도 최소한의 예절은 갖추어야 한다. 누구의 세금으로 움직이고 있는가. 효과없는 바리케이드는 빨리 빨리 거두자. 범죄의 몇%를 불심검문에서 예방하고 있는가. 군인들의 정치참여와 최루탄과 화염병 그리고 철조망과 바리케이드 없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나는 올해에도 절밭에 콩을 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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